입술이 부르트기도 하고, 한낮에도 밀려드는 잠을 이기지 못해 쓰러지듯이 잠들기도 한다. 외부에서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을 수많은 모임이 취소되는 것을 바라보고 ‘그럼에도’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글을 만난다. 그들 역시 나처럼 마음이 아려왔으리라 생각한다.
홀로 아이와 지내는 시간이 점점 더 많이 늘어간다. 지금처럼 온전히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감정은 또 다르게 흘러가는 것을 모른척하기가 힘들다. 이제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이전처럼은 아닐지라도 다시 만날 수많은 인연들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하지만 이성이 눈을 가린 채 집단 몰이성과 이기심으로 이어지는 걸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집단 규탄의 목소리를 견뎌낸다. 나는 다시 책들에 나의 온 정신을 집중한다. 노트에 글을 휘갈겨 적으며 입 밖으로 내지 못할 말들이 휘발되는 것을 느낀다.
모든 것을 내려두고 싶다.
나의 외부에 비친 모습을 지우고 싶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야
그런데 나는 또다시 함께 이야기하는 것의 힘을 믿는 사람들을 만난다. 시집 한 권을 읽으며 삶에서 다른 시선을 바라볼 수 있게 돕는 달력모임. 그림책과 소설책을 연결지어주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만남. 그림책으로 ‘다시’를 이야기하는 그림책 테라피스트의 이야기. 참 다행이다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전에는 낯설게 느껴지던 ‘대면’이라는 용어가 앞세워지는 대면만남이 아닌 ‘비대면’만남들을 찾는다. 나 역시 책으로 이야기를 이어갈 만남을 준비한다. 휘발되곤 하지만 만남 당시의 분위기가 큰 중심을 이루던 대면 만남들을 제쳐둔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화면 너머로 삼삼오오 모인다. 이제는 ‘랜선’이라는 차가운 단어가 온도를 품기 시작했다. 그 온도가 따듯하게 지금의 우리들을 품어줄 것을 온전하게 믿는다.
혼자 읽어도 괜찮은 시간들. 어떤 강제성에 얽매이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혼자 읽고 나서 다시 함께 이야기하는 이들은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속내를 조심스럽게 꺼내어본다. 그녀들 안에 숨어있던 보석(미처 알지 못했던)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바라본다. 그녀들도 그걸 함께 느끼고 있을거다.
시대에지지 않고, 우리는 이제 어디서든 ‘함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안다. 아이와 마주 앉아 책을 한 장 넘기고 아이의 공부를 봐주고, 또 한 장 넘기고 아이의 잘못된 발음을 다시 고쳐준다. 아이가 겨우 잠이 들면 아이를 재우던 자장가에 나도 덩달아 눈이 감기려 해도 살며시 빠져나온다. 몸을 쭉 펴고 집의 한 구석에 나의 자리로 돌아온다. 아무리 시간이 늦어도 이 시간이 아니라면 못할 수많은 것들을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하루는 언제 채워질지 모를 ‘사유바구니’를 채워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지나간다. 한숨이 나오는 순간도 많이 지나가고 아이와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생각한다. 완벽한 부모가 되려하지 않는다. 완벽한 사람이 되려하지 않는다. 지금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 지금의 내게는 가장 필요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