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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Oct 31. 2020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소설을 읽는 다는 것

제인오스틴 / 오만과 편견

s에게



언젠가 네가 이 책을 읽을 날이 오겠지? 첫 순간은 짜릿한 연애소설로 시작하여 결혼이야기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다가 중간즈음에는 지루하고 답답하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건 아닌가 모르겠구나. 그리고 마지막에 사랑을 고백하는 부분은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지. 이 소설이 그런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만을 담았다면 어떻게 100년동안 종이의 물성을 그대로 유지한채로 여러 사람들의 손에 들려졌겠니.



"상당한 재산을 소유한 독신의 남자는 아내가 필요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다들 인정하는 진리입니다. 이러한 진리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으므로, 이런 남자가 어떤 동네에 이사를 오면, 그 남자가 무슨 마음을 먹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해도, 동네 사람들은 그 남자를 자기 딸자식이 차지하기에 마당한 재산으로 여깁니다."



두꺼운 소설 책의 첫 문장이 이렇다니, 너는 아마 적지않게 충격을 받고 말도 안된다며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지도 몰라. 사실 나 역시 이 문장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시절이었다면 더 듣기 싫은 말이었을거야. 하지만 사랑으로 결합되는 수많은 부부 이야기들 너머로 훨씬 많은 이들에게 사랑보다는 일단 살아감을 위해서도 선택되어야 했던 거지. 이런 시대에서 관계, 사랑, 명분, 실리, 가족. 그렇게 지금도 우리가 늘 고민하고 분투하며 지내게하는 수많은 것들이 얽혀있는 걸 모른체 할 수 없었을 거야. 아마도 제인 오스틴이라면 말이야.



이 책에 등장하는 제 2, 아니 제 3자의 인물인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럿의 말과 행동들이 뒤늦게 현실적으로 와닿는 것도 그때문이겠지.

네가 이 책을 한 번이 아닌 두 번 이상 읽는다면 샬럿을 그냥 넘겨 보지 않았으면 해. 의외로 아주 현실적인 인물이고, 그 현실적인 감성이 사실은 우리 내면에도 조금씩 있거든.



"아! 알다시피 언니는 모든 사람들을 좋게 보려고 하잖아. 누구에게서도 결점을 보는 법이 없어. 언니 눈엔 세상 사람들이 다 선량하고 친절하지. 나는 지금껏 살면서 언니가 누구를 욕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비난하는 일은 피하고 싶거든.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는 않아."



엘리자베스와 제인은 대화를 많이 나눈단다. 자매는 어느새 서로에게 가장 큰 질투심과 연민과 애정을 담게되는 관계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사이에서도 서로에게 가장 큰 마음의 안식처와도 같은 관계일거야. 이 대화에서, 언제나 누구에게든 다정한 눈길과 마음을 건네는 제인의 한 마디에 가장 중요한 걸 발견하기도 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모습에 어쩌면 더 많은 그들의 속사정이 숨어 있을 거거든. 그걸 늘 간과하곤 해. 상처를 주기도 하고 거꾸로 상처를 입기도 하지. 그 상처는 다른 이들로 다가가는 내 마음을 다시 가라앉히기도 하지. 그래서, 조금 더 멀리 떨어져서 생각을 하는 건 어떤가 싶어. 그 순간의 정중앙에 위치한 내 모습을 조금 떨어져서 다른 이와의 거리도 가늠해보는 위치에서 말이지. 우리가 안다고 자만하는 수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며 그들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해. 여전히 어렵지만, (어쩌면 평생 해야될지도 모르지만)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해.



엘리자베스의 생각은 펨벌리 저택의 오직 한 곳,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바로 지금 다아시 씨가 있는 곳에 쏠려 있었지요. 지금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직 나를 사랑할까, 엘리자베스는 정말 알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이 정중한 태도를 보인 것은 그저 담담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목소리에서는 담담하다고 말할 수 없는 뭔가가 느껴졌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를 만났을 때 불편함과 반가움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컸는지 엘리자베스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담담하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언젠가 사랑을 하고, 사랑의 감정이라 느껴지는 감정도 받아들이게 될거야. 수백가지 사랑에 대한 정의를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지. 그럼에도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어디를 가도 그 사람으로 가득찬 상태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닌가싶어. 엘리자베스가 갑자기 이렇게 그를 향하는 마음은 사실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몰라. 무도회장에서 다아시 씨가 자신을 향한 무례한 말을 한 것을 엿들었을 때부터 엘리자베스는 그를 오만한 사람, 거만한 사람을 생각하고 그를 미워하기 시작하지. 미워함의 감정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나타나지 않는 법이거든. 너는 어떤지 궁금하구나. 사랑이라는 감정이 너무 크게 올라와서 자신의 모습이 다 사라져버리는 순간 그 관계는 이미 허물어지기 시작할거야. 그러지 않도록 조심하길 바라는 마음이란다.



너는 아주 많은 것을 더 발견할 수 있을거야. 많은 사람들이 곁에서 말하는 것 이외에도 말이다. 그러니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랑받아온 그녀의 소설을 흔하다며 계속 밀어두지 않길 바란단다.



2020.10.31 

너를 아주 깊숙한 애정으로부터 사랑하는 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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