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주 May 15. 2021

{라이팅 클럽} vol.1 : 시작을 이야기할 수 있나

라이팅클럽 vol.1




시작을 이야기할 수 있나요?





이제 곧 마흔을 앞두고 있어요, 언니. 그런데 저는 여전히 ‘시작’을 이야기하고 싶은 어린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참 많은 ‘시작’을 만난 것 같아요. 첫 학교에서의 시작, 고등학교의 수험 생활의 시작, 대학교 시절의 시작, 연애의 시작, 부부로서의 시작, 그리고 엄마로써의 시작. 그런데 전 무엇이 또 아쉬워 이렇게 ‘시작’을 늘 그리워하는 걸까요?





내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거나 웃음 짓던 아이가 조금씩 나와 눈을 마주치기 시작하면서, 적어도 나는 이 아이에게만큼은 자랑스러운 어른이고 싶었어요.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는, 배우고 싶은 어른, 지혜로운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어떤 모습의 엄마가 되면 좋을까, 늘 생각해왔어요.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 사이에서 아이의 육아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읽다가 제가 너무 부족해 보였죠. 그 후로 육아서 대신, 다른 다양한 분야의 책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키도 작고, 잘난 것 없다고 늘 생각하는 열등감 가득했던 저였기에, 조금 더 당당한 모습의 엄마이고 싶었던 거죠. 그것이 많은 변화의 첫 시작을 이끈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가 조금 더 자라고 난 이후에는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독서모임에 참여하였어요.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던 제가 내 이름 석 자로 불리기 시작했지요. 나의 생각이 얼마나 훌륭한지 여부에 상관없이 세심하게 귀 기울여주는 모습과 눈빛들을 주고받았어요. 그것으로도 충분했어요. 비로소 제 자신일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이후로 처음으로 모임을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했어요.





그 처음의 책은 히가시노 에이고의 <나미야잡화점의 기적>이었어요. 이야기의 전개에 그냥 빠져들어 이미 정해진 끝이 있어도 그 끝이 이어지는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죠. 그 때의 저는 책을 고르는 기준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그저 내가 읽고 싶던 책들을 주로 고르곤 했죠. 그리고 시작한 모임들에서 다행히도 함께 같은 책을 읽는 것으로도 늘 시간은 금방 흘러갔어요.





그 독서 모임 첫 시작 이후로, 주춤한 시기가 있었어도 여전히 독서 모임들을 지속할 수 있게 한 것은 제가 저 자신 그대로를 인정받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어요. 그 느낌은 생각보다 아주 오래 제 의식 밑바닥까지 가라앉아 망설일 때마다 수시로 올라왔지요.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마다 두근거리고 금방 얼굴이 빨개지곤 했던 제가 어떻게 매번 내 생각들을 과감하게 드러내게 되었는지 아직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저 책의 문장들에 기대어 내 생각을 조금씩 흘려보낼 수 있었고 그것으로도 내 마음이 늘 홀가분해지곤 했어요. 많은 독서론, 독서토론 지도사의 자격들이 화두가 되고, 자연스럽게 자격증이라도 따 두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사실 직접 사람들을 만나면 그 분위기에 맞춰져서 이야기의 방향은 늘 달라졌어요. 그래서 논제를 뽑고,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하는지의 많은 이론적인 내용보다 그 모임들에 따라서 스스로 질문이나 이야깃거리를 던지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가 하는 독서모임 리더로써의 역할은 참여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내어 보이고, 서로의 생각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배려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몇 년이 지속되어 오면서 가장 바뀌지 않는 부분은 이 점이에요. 진행 방법도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조금씩 자리를 잡게 되었죠. 그 시간이 짧지 않았고, 수많은 자기반성, 자기 검열을 거쳐야 했어요. 수시로 자괴감에 휩싸이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했을지도 모르고요. 그럼에도 수많은 시선과 외부의 모습들에 이제는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고유의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어요. 책을 읽어야 하는 시간은 하루의 시간들 틈에서 조금씩 내어 보고 있어 여유로운 날들은 아니지만 다른 것을 생각지 못할 만큼 맹렬하게 파고 들어가리라 생각하면서 말이죠.





북 코디네이터의 본령은 ‘나눔’이다. / 혼자 읽기에서 함께 읽기로, 고독을 지나 공감과 연대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에 다정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삶을 좀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책 씨앗을 심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 책이 연결고리가 되어 함께 읽어 서로 빛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 이화정 <함께 읽어 서로 빛나는 북코디네이터> 프롤로그





그리고 결국 저에게도 함께 읽는 것은 고독을 지난 공감과 연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라 믿었지요. 흔들리는 속에서도 잊지 말자며 수십 번 다짐했던 단어들이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독서모임들을 진행할 때마다 서로 전해지는 말들, 분위기, 생각들 덕분에 홀로 고군분투하며 모임을 준비하던 외로움의 순간을 자주 망각하곤 해요. 이 망각의 힘이 여전히 수많은 ‘그럼에도’의 질문에 답할 수 있게 해주어요.





제가 시작을 말하고자 하는 것에서 왜 굳이 이 독서모임들의 시작을 이야기했는지 의문스러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내가 말하는 이 시작들이 여전히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나를 위한 배려이자 꾸짖음의 시작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또 어떤 시작들이 어떤 과정으로 나를 이끌어 가게 될지 여전히 저는 알지 못해요. 하지만 이제는 조금 두려움은 내려두고 다독이며 앞으로 나아가려 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