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편지를 받고 며칠 내내 든 생각은 '열정(정열)'이었어. 네게 '시작'이 그렇듯, 내겐 늘 '열정(정열)'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녔거든.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삶. 그건 어린 시절부터 어쩌면 지금까지도 나를 매료시키거나 주눅 들게 하는 화두야.
'식물을 들여다보고 밑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는 지금의 일상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꼭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려야만, 잠 못 이룰 정도로 설레야만 간절한 꿈, 소중한 마음은 아닌 것 같다. 묵묵히 잔잔하게 만들어 가는 꿈도, 그렇게 품은 마음도 충분히 힘을 가지고 있다. '
<식물 좋아하세요?(식물 세밀화가의 친애하는 초록 수집 생활)/조아나/카멜북스>
얼마 전 만난 이 구절을 읽고 조각조각 떠돌던 생각들을 그러모으지 못했다면, 아직도 난 열정만 좇으며, 끊임없이 시작하고 준비하는 일로 얼마 되지도 않는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었을 거야. 아예 찌그러져 버렸을지도 모르고.
생각을 모았다고 했지만, 다시 생각하니 어쩌면 같은 결을 가진 사람을 만난 반가움이 더 컸던 거 같아. 나만 유독 열정적인 삶을 고민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 받았다고 해야 할까.
평범한 일들은 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꿈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크게 갖는 것이 좋다' 같은, 돌이켜 보면 강압적이고 무자비한 담론에 길들여진 탓도 있겠지.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런 꿈이나 야망 앞에 늘 세트처럼 등장하는 열정(정열)은 늘 흠모의 대상이었어. 늘 쉽게 지치고 금세 에너지 딸리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반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친구나, 누가 불러도 미동 없이 제 공부에 열중하는 친구, 제 2의 서태지를 꿈꾸며 교실 이데아를 열창하던 친구들을 줄기차게 따르고 좋아하기도 했지. 그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봐. 내겐 없지만, 어떻게든 꼭 찾아내야만 하는 그것을. 그래야만 의미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러니까 나는 늘 열정(정열)적인 삶을 준비하는 사람. 시작하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야.
나를 가슴 뛰게 만드는 일. 미치도록 강렬히 붙드는 것. 너무 좋아 죽겠어서 밤잠까지 설치게 만드는 것들을 찾아 이리 저리 많이도 기웃거렸어. 번번이 금방 지치고 말았다는 부끄러운 고백도 해야겠다.
그러던 어느 순간엔, '아, 나는 백날 뭘 해봤자, 결국 이뤄내지 못하겠구나. 늘 시작만 하다 끝나는 사람이겠구나' 싶더라. 우습지? 아무 것도 제대로 해 본 적 없으면서. 그래서 그때부턴 그냥 놓아버렸어. 열정적인 뭔가를 찾으려는 시도도 고민도 다 던져 버리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아무것도 의미 없다'로 돌입하게 돼 버렸지.
그때, 누군가 내게 사는 데 꼭 그렇게까지 거창한 열정(정열)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말해줬다면, 조금 더 천천히 내 안에 있는 걸 들여다봤을까?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
사심 없이 순수했던 '동경'도 시샘과 질투로 바뀌면서부터는 열정은 나를 괴롭히는 단어가 되어 버렸어. 마음엔 '회의'라는 이름의 필터가 장착되어 있어 언제나 뿌옇게 시야가 흐렸지.
그런 내가 그저 그런 삶도 있는 거라고, 차곡차곡 모이면 의미 있는 일도 있다고 말해주고, 풀꽃도 자세히 보면 아름답다고 알려주는 인연을 만나게 될 줄이야. 우리는 언제나 반짝인다고. 친절과 다정을 한없이 내어 주는 인연을 만나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
밑줄 그은 문장에서, 책을 권해주는 마음에서, 내 말을 귀에 담고 다독이는 손길과 따뜻한 눈빛에서 꽁꽁 얼어붙었던 내 마음이 얼마나 속수무책으로 녹아버렸는지, 얼마나 후련하고 상쾌해 눈물이 다 났는지, 어떻게 알려 줘야 할까.
그 덕에 요즘엔 이런 생각을 해. 어쩌면 내게도 열정이 있었을 거라고.
너무 엷어 존재하는지 몰랐을 뿐, 실은 아주 아주 자그맣고 잔잔하게 내게도 열정의 조각들이 날마다 겹쳐졌던 거라고 말이야. 사소하고, 소소해 실소마저 자아내는 평범한 것들일지라도 존재하고 있었다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참 기쁘더라. 억지로 무리하지 않아도 필요하면 늘 그만큼의 열정이 고여 있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시작'을 이야기한 네 글을 헤아리며 이렇게 자문했어.
'무수히 많은 시작'을 경험하고도 여전히 '처음'을 되새기고, 또 다른 시작을 만들어 가고 싶어 하는 건 너도 그 시작에 깃든 열정을 사랑하기 때문 아닐까, 하고.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끝보단 시작에 가깝고, 시작이 익숙한 사람들이라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도 함께.
인생이란 직선의 왼편과 오른편에 각각 시작과 끝이 놓여있다고 생각하면, 우린 이미 중간지점까지 와 버린 사람들일 거야. 그렇다 해도 우리는 아직 시작이 조금 더 익숙하고 친숙한 사람들이기도 해. 모든 것이 불확실해 아무 것도 쉬이 단정 지을 수 없는 끝은 상상하는 것조차 힘드니까. 그래서 번번이 시작만 하다 끝나거나, 온전히 매듭짓지 못한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고 해도 우리는 또 다시 시작하고 기꺼이 용기를 내면서 어떻게든 왼편에 속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봤어.
우리가 한참 더 나이 들거나, 삶을 마무리해야 하는 과정에 놓인다면 그땐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없을지도 몰라. 끝이 다가와 있고, 끝을 봐야만 하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예정된 순간과 만나게 될 테니까. 그래도 난 가능하다면 끝까지 '시작'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고 싶어.
시작을 '어린 마음'으로 표현한 네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는데, 매일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떠올리니 알 것도 같아. 매일 시작하는 아침, 매일 뜨는 해, 매일 태어나는 해! 태어난 걸 시작이라고 한다면, 시작은 늘 '어린' 것 일 테지. 그래서 더욱 끝까지 '어린 마음'으로 '시작'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돼. 내 안에 고인 작은 열정들을 사랑하며, 매일 시작하는 삶을 소중히 가꿔가는 어린 마음의 소유자가 될 거라고! 후후.
매일 되풀이 되는 삶에 '시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열정(정열)'을 붙일 수 있는 순간이 좋다. 라이팅 클럽을 너와 시작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알아낼 수 없는 세계로 남았을 거란 생각이 드네. 고마워. 이렇게 생각하고 쓸 수 있게 해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