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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Jun 19. 2021

{라이팅 클럽}vol.3: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요?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요?



푸르름이 점점 더 깊어지는 계절이 되었네요.

강한 햇살에 눈부셔하다가도 ‘코모레비’(こもれび: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햇빛의 조각). 올려다보며 반짝거림에 취하기도 하고요. 시원한 공기를 느끼게 하는 빗소리가 멎을때면  진해진 색감을 뿜어내는 초록색 나뭇잎들을 황홀하게 바라보기도 해요.

이제 그런 계절, 여름이 되었네요.



사실 전 여름을 정말 싫어해요. 후덥지끈한 공기, 장마가 지난 후 느껴지는 습기 가득한 공기와 특유의 냄새, 자주 내리는 비와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흐르게 하는 햇빛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죠. 입맛은 없어져서 밥을 물에 말아먹기도 하면서 여름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어요. 그런데 그런 제가 여름의 뜨거운 열기마저 흔쾌히 기다릴 수 있게 되었어요.



요즘 여름의 푸른 빛이 더 아름다워 보이게 만드는 책을 만났어요. 이 책의 작가가 윤동주의 시 <산림> 중 ‘나무 틈으로 반짝이는 별만이 / 새날의 희망으로 나를 이끈다’라는 구절을 만나 독서 모임의 주제를 정하게 되었다고 해요. 나무 틈으로 반짝이는 별은 아마도 햇살이겠죠. 고요히 숨쉬던 나뭇잎들이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서로 부딪치며 소리를 내요. 그리고 햇살이 그 나뭇잎들 사이 틈새로 고개를 내밀어요. 저도 모르게 이제는 이전보다 더 자주 나무를 올려다보곤 해요. 그냥 바라보던 초록 잎들이 햇빛에 비쳐 조금 연해지고 햇살이 반짝거리며 나뭇잎들 사이로 비춰드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요. 여름이 이제 저에게도 아름다운 계절이 된 걸 확인하는 순간이에요. 그 순간만큼은 외국의 아름다운 장소들이 전혀 부럽지 않아요.



그렇게 ‘아름다움’을 마주한 순간은 청춘 시절에 만났던 아름다움들보다 더 오래 잔상을 남기곤 해요. 그런데 궁금했죠. 아름다움을 어디에서 더 만날 수 있을것인지 말이에요. 그저 예쁜 것, 예쁜 장소, 화려한 것들만 아름다울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아름다움을 소망하는 것은 영영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지금 만나고 있는 책 덕분이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눈앞의 시간, 낮과 , 사계절 사이에 아름다움이 널려 있다.  주변에 놓인 대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름다움은 불쑥 나타난다.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들을 정성껏 돌보는 행위 속에도 아름다움은 깃들어 잇다.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만큼 누리는 선물이다.

- 이화정 <아름다움 수집일기> 13p



누구에게나 놓여있을 아름다움들이 저에게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껏 찾아헤매고 싶어졌어요. 책 속 저자의 시선을 따라 가면서 저도 모르게 웃음짓기도 하고, 찡해지는 마음에 코끝이 시리기도 했고,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며 같은 마음이라고 저자에게 들리지 않을 공감의 말을 건네기도 했어요. 그래도 여전히 무서웠어요. 나의 지금을 알리는 시간이 계속 흘러가는 것이 두렵기만 했었어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채 계속 흘러만가는 시간이 야속했거든요.



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기대도 된다. 하루하루 조금씩 더 사랑하게 될 거고, 아름다운 것들을 더 많이 찾아내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작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할머니, 다정하고 사려 깊은 할머니, 지혜롭고 품위 넘치는 할머니, 악한 것을 선함으로 견디며 물리치는 씩씩한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되어 내 안의 아기, 소녀, 아줌마를 더 살뜰히 보살펴 주고 세상을 더 뜨겁게 사랑하고 싶다.

- 위의 책 31p



그런데, 조금씩 마음을 다독여봐요.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이 나이가 들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을 들었으니 말이죠.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을 더 많이 찾아내며 살아낼 자신을 알기에 괜찮다고 말하고 있어요. 어떤 모습, 어떤 행동들로 이루어진 모습의 내가 될지 아직 모르겠지만 흘러가는 일상에서도 아름다움을 건져 올린 이의 모습에서 저도 똑같이 닮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아름다움을 저도 찾아내어 똑같이 동생들에게 손을 건네고 싶어졌어요. 지금 이 시간을 지내고 있을 미래의 동생들에게 말이죠. 그 지난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름다움을 찾아 다녔고 그 때 찾았던 아름다움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곁을 지킨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럼, 지금 부지런히 찾아 다녀야겠죠?



쓰다만 노트에서 발견한 필사의 흔적, 오래된 앨범에서 찾아낸 작은 사진, 여전히 좋아서 내 책상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낡아버린 책, 짧아진 몽당 연필, 선물 받은 편지들, 예뻐서 모아둔 종이와 노트들.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많은 것들이 제 곁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이겠죠. 아름다움을 수집해 나가는 저의 일상들이 이렇게 시작되려나 봅니다. 함께 아름다움을 수집해나가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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