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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Aug 07. 2021

{라이팅 클럽}vol.5:아름다움의 또다른 이름

빛나지 않는다고 여겼던 것들이 결국은 아름다움의 또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는 수많은 독서모임을 향한 애정을 담아서)



유난히 지치고 매미 소리에만 겨우 여름이 왔구나 느끼게 되는 올해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언니, 저는 계속 힘을 내야 했어요. 비단 아이가 늘 곁에 있어서만은 아니었어요. 여름이면 늘 아팠고, 기운이 없어져서 모든 것에 의욕을 잃어버리곤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이전에는 여름이면 모든 모임이 멈춰버리곤 했어요. 아이를 데리고라도 와서 얼굴을 보며 우리가 책에서 만난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지만 그 바람은 늘 바람으로만 멈춰버렸어요.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여름이 되어도 멈추지 않았어요. 물론 버거워지는 코로나 사태와 여름 방학의 여파로 평소 참여하던 인원이 모두 참여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함께할 수 있다면 화면을 열고 웃으며 모임을 시작했어요. 얼굴을 마주 보며 하는 모임만을 시작했고, 온라인은 채팅으로만 진행했던 소예의 독서모임은 이제 같은 공간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지 않아도 가능한 독서모임으로까지 번져나가기 시작했어요. 코로나 덕분에 ‘줌’으로 만나는 것이 가능해졌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할 때는 여전히 얼굴이 빨개지기도 하지만 매 순간에 저 스스로를 극복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저에게도, 함께 하는 이들에게도 더 강한 힘을 준 책이 있었어요. 똑같은 책으로, 두 번이나 모임을 진행하였어요. 저에게는 의미가 너무 강하게 와 닿은 책이었기에 저를 아는 누구든지 이 책을 꼭 읽기를 바랬어요.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길어 올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삶을 향한 애정을 느끼게 해 준 책이었어요. <아름다움 수집일기>라는 이화정 작가의 에세이에요. 보통 모임은 늦은 밤에 진행이 되기 때문에, 아이를 모두 재우고 조금은 어두워진 조명이어도 얼굴은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우리는 화면 앞에 모여 앉았어요. 우리들 하나 하나의 목소리와 책에서 만난 순간들에 감명 받은 모습은 모두 달랐어요. 그 다름에서 발견되는 것을 작가님은 하나 하나 소중하게 쓰다듬어 주셨죠. 본인에게도 자신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이 아름답기만 하겠냐며 웃기도 하셨어요. 책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꼭 전해주고 싶었다는 ‘터널’이야기는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정말 끝도 없이 힘겨움만 있을 것 같던 날에 우연히 터널 안을 달리다가 저 끝 터널에서 발견된 노란 빛은 나뭇잎들이 모여 빛을 내던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고 해요. 자신이 이겨내야 하고, 어떻게든 스스로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던 순간이 있었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결국 아름다움의 순간, 빛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해주셨어요. 저역시 늘 그랬거든요. 힘든 시절에는 그걸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가 어떻게든 힘을 내야 하고,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버겁고 끝이 없을 것만 같다고 느꼈죠. 이제는 조금 힘을 내려두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순간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노력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고속으로 달려나가지 않겠다는 것이죠.)



또 한 가지, 우리가 써 내려가는 하루하루의 이야기는 곧 스스로가 한 권 한 권의 책이 된다는 의미를 이해시키고 싶어 하셨어요. 나의 모든 것이 너무나 사소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이 평범함들도 하나씩 기록으로 쌓이면 결국 감동과 삶에 대한 애정 그 자체의 책 한 권이 될 것이라고 말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너무나 잊기 쉬운 것은 모든 이야기의 시작, 이유, 마음들이었고 그 본질이 ‘행복’이라는 사실이었어요. 행복해지고 싶어서 시작한 많은 것들은 늘 빛을 바라기 일쑤였죠.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어떤 결실도 이루어내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지속되기는 너무나 쉬웠어요. 하지만 다시 서로의 눈빛을 보는 순간 저 역시 그것을 발견한 것 같아요. 서로에게 공감하고 이해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시작했던 독서모임 리더로서의 제 모습과 제 마음 말이죠. 결국은 제가 사람들에게 받는 그 많은 시선과 공감은 저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거예요.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했어요.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얼굴을 끄덕이고 웃기도 하면서 말이죠.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시간과 진행하는 시간은 너무나 달라요. 매 모임은 온마음을 다해서 준비하지만 그럼에도 이 모임이 끝난 후 결국 웃게 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어떤 날은 부담감이 앞서기도 해요. 매 모임이 끝나고 나면 연필을 노트 위에 털썩 내려놓고 귀에 꽂아둔 이어폰을 얼른 빼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요. 모든 힘을 빼고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죠. 그러고 나서야 모임을 빨리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시켜요. 사람들의 목소리, 자신의 마음을 내어보이는 이야기들, 표정, 웃음, 끄덕거리는 몸짓들, 두 손을 흔들며 인사하던 모습, 그 모습들이 다시 제 안에 에너지로 바뀌어 뜨겁게 돌아다니는 걸 느껴요.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독서모임에 중독되었다고 말하곤 하죠. 이 경험을 할 수 있는 걸 이제는 포기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 같아요.



홀로 읽던 외로움을 지나 이제는 함께 읽는 든든함을 알아버렸어요.



책에 대한 사랑, 특히 한 권의 책에 대한 사랑을 공유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양편 모두에게 까다로운 문제다. 엄밀하게 말해, 사람들이 책을 권할 때, 아무나 마음대로 보라고 자신의 영혼을 열어젖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라고 말하면서 건네줄 때, 그런 행동은 그들 영혼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우리가 좋아하며 읽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어떤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책이 우리 자신의 어떤 면모를 진정으로 나타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 니나 상코비치, <혼자 책 읽는 시간>





이런 순간들을 위해서 홀로 책 읽는 수많은 시간이 있어도 이제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오히려 이 책을 건네주고 싶은 이가 떠올라서 설레는 감정으로 변하곤 해요. 이 책으로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니 이전의 ‘괜찮기 위해’ 괜찮다는 말을 하던 것과 달리 정말로 ‘괜찮은’날들이 이어지고 있어요.



많은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여전히 계속 지속하겠다는 것은 이제 스스로를 위해서도 멈출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 같아요.



<아름다움 수집일기>로 두 번의 모임을 하고, 그 사이에 이어진 많은 모임들을 진행하면서 저에게 남은 이야기는 그것이었어요. 우리 각자의 이야기들과 함께의 의미를 되새기고 깊이 받아들이는 것 말이에요. 이제는 쌓여진 책 탑이 저를 노려보기는커녕 다정하게 기다리고 있노라고 말하는 듯 하네요. 함께 나눌 이들을 생각하면서 말이죠.



이 뜨거운 여름도 이제 입추에 들어서며 조금씩 안녕을 말하면서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네요. 가을의 푸른 하늘 아래에서 저는 또 어떤 이야기를 언니에게 전하게 될까요? 그 날을 기다리며 편지를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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