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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Oct 02. 2021

{라이팅 클럽}vol.6:아름다움 수집일기 인터뷰

이화정) 안녕하세요.



스달) 안녕하세요, 작가님,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초대에 응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이화정) 아닙니다.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마음 같아선, 제가 사는 동네 곳곳의 아름다움도 함께 나누고 싶었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 이렇게 진행하기로 했는데, 괜찮죠? 



스달) 그럼요~화면상으로 만나고 있다는 느낌도 별로 안 들어요. 꼭 곁에 앉은 느낌입니다.



이화정) 하하하. 그렇게 느꼈다니 다행이네요.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 꼭 만나요~






본.격.대.화



스달) 작가님, 보내드린 질문지 어떠셨어요? 전문 인터뷰어가 아니다 보니 질문이 조금 허술했죠?



이화정) 인터뷰어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보니까요, 저는(웃음) 질문 내용들도 아주 좋았어요. 정말 내 책을 꼼꼼히 읽어주었구나, 싶어 감동스럽기도 했어요.




아름다움 수집 일기란



스달) 그렇게 봐주시니 부끄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네요. 그럼 본격 질문 드리겠습니다.(웃음) 저는 '아름다움 수집 일기'라는 제목부터 참 마음에 드는데요,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아름다움을 수집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궁금할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 작가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화정) 말 그대로 내가 아름답다 여기는 것이죠. 처음엔 아름다움이라기 보단,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 예쁜 것. 내가 보면 기분 좋아지는 것들을 한 번 모아봐야지 그런 생각이었어요. 



매달 <반짝이는 달력 모임>이란 시모임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때가 마침 ‘틈새에서 반짝이는 것을 모아보는 달’이었어요. 코로나로 한참 힘든 시기이기도 했고요. 일상이 참 우울하게 느껴지는데, 하루 종일 그런 우울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면 더 힘들 것 같더라고요. 어떡하면 하루하루 좀 더 잘 보낼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그래도 하루에 한두 가지 정도는 재미있고 신나는 일,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마음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어떤 날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되게 신기한 식물을 보고 ‘어, 신기하다’ 하고 지나가려는데 자세히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다시 갔죠. (틈새에서 반짝이는 것을 모아보는 달이라는)모임주제가 생각났거든요. 이름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서문에 나오는 ‘풍선초’였어요. 진짜 풍선처럼 생긴 초록색 동그란 열매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게 너무 귀엽고 신기하더라고요. 



그때 기분이 갑자기 확 좋아졌어요. 처음 보는 식물을 본 것도 그렇고 그 식물을 감탄하며 바라보는 내 모습도 참 좋았어요. 나한테 아직 이런 걸 보고도 감탄할 줄 아는 마음이 남아있구나 이런 마음이 든 거죠. 그래서 ‘와, 너 정말 예쁘다’ 그랬어요. 그 말을 입 밖으로 뱉는 경쾌하고 기분 좋은 내 목소리가 다시 귀에 들리니까 어쩐지 신나는 일이 생길 것 같더라고요.(웃음)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하루에 한 가지라도 나를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는 것을 찾아보자 하다 보니 그런 것들을 아름다움이라고 부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수첩 첫 장에 ‘아름다움 수집 일기’라고 썼죠. 물론 모으는 동안 모든 게 아름답진 않았죠. 그렇지만 ‘아름답지 않은 것들 속에도 아름다운 게 있을 거야’ 하며 아름다움을 찾아낸 흔적이 있어요. 내가 아름답게 보려고 노력한 흔적의 기록이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아름다움 수집 일기>는 아름다운 것들에서 또는 아름답지 못한 경험에서 애써 무언가를 모은 기록이라고 봐 주세요.







깜빡깜빡-신호를 보내는 건



스달) 작가님의 전작<모두의 독서>나 <북 코디네이터>에서는 주부나 여성. 특히 단절된 시간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에게 끝없이 메시지를 보내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번 <아름다움 수집 일기>에서는 그 느낌이 더욱 진해진 것 같고요. 특별히 그 부분에 마음 쓰시는 연유가 있을까요.



이화정) 왜냐하면, 내가 그 마음을 지나왔으니까요. 그런 이름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밟혀서이기도 하고요. 나도 그 당시엔 위로를 해주거나 그 시간을 잘 지나가보라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좌절하며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그 시기를 보냈죠. 그래서인지 그 사람들을 위해 계속 마음을 쓰고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아요. 어쩌지 못하는 심정을 제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애틋한 이름들,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다보니 이 시가 생각나더라고요. 김사인 시인의 <조용한 일>이란 시예요. 



제가 그 당시 일을 하기 위해 굉장히 열심히 살았거든요. 열심히 공부하고 애썼는데 결국은 그냥 일하지 않는 사람, 일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더라고요. 그래서 사원증 건 여성들이 점심시간에 지갑이랑 휴대전화 들고 밥 먹으러 가는 걸 많이 부러워했죠.(웃음)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이제 나는 꿈을 펼칠 기회가 없을 거야, 일말의 기대감도 없던 그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시를 만나게 된 거예요. 정말 위로가 되었어요, 짧으니까 읽어드릴게요.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 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김사인, 조용한 일 전문-



정말 이도저도 못하는, 그냥 있어볼 일 밖에 다른 길이 없어 너무 슬플 때, 떨어진 낙엽하나가 내가 네 마음 알아, 내가 곁에 있어줄게, 하는 그 느낌이 너무 고마웠다는 얘기를 이렇게 표현한 거잖아요. 저한텐 이 시가 그 낙엽이었어요. 정말 어쩌지 못하는 내 곁에, 이 시가 낙엽처럼 내려와 가만히 위로해 주는 것 같아 너무 고마웠어요. 



그래서 제가 한창 터널을 지나는 주부, 여성, 단절된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보내고 싶었던 메시지는, 


힘든 시기를 탈출하는 묘안이 사실은 없다. 어떤 순간은, 자기 인생의 어떤 시절은 그냥 견뎌야 할 때도 있다. 나는 그 시기를 당신이 잘 견뎌내기를, 잘 통과하길 바란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거에요. 


그러니 자꾸 마음이 쓰이는 거고요.



그때 제 곁을 조용히 지켜준 존재가 시였고, 책이었던 것처럼 사람들에게도 말없는 교감으로 이런 위안을 전해주고 싶어요. 책을 읽어보든, 시를 읽어보든 무언가를 찾아보라고 해주고 싶고요.


 그러면 그땐 반드시 이도저도 못하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위로해 주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것도 알려주고 싶어요.


 특히 이 책이 그런 낙엽 같은 책이 되어주길 바라요. 그냥 가만히 옆에 두어도, 만약 책 읽을 여력도 없다면 표지만 보고서도 위안이 되는 조용한 낙엽 같은 존재이길. 이런 마음이에요.




스달) 와…너무 감동적이라 말을 못 잇겠어요.




이화정) 저도 이 시가 생각나 더 감동이었어요. 그때 나에게 찾아왔던 이 시처럼, 누군가 내 책을 읽고 딱 이런 마음으로 생각해 준다면 글을 쓴 저도 너무 감동적일 거 같아요. 남편도 누구도 몰라줄 것 같은 이 마음을 이 작가가 알아주네, 이 사람도 이런 적이 있었나 보다. 이렇게 생각해주면 말이에요. 그래서 가만히 곁에 두기만 해도 위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아름다움은 모아서 뭐 해? 묻는 사람에게



스달) 아…어쩌죠, 다음 질문이 너무 무색해지는데요, 그래도 혹시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과감하게 질문 드리겠습니다.(웃음) 그럼에도 그렇게까지 아름다움을 모은다고 달라지는 게 무엇이냐! 말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 분들께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이화정) 나는 오히려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러니까 까칠한 질문이죠. 엉망진창인 세상에 아름다움이라니, 배부른 소리 팔자 좋은 소리한다. 이런 뉘앙스잖아요? 그래서 뭐가 달라지냐고 물으면 저도 까칠하게 대답할게요.(웃음) 



내가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수집해서 주변과 일상 곳곳에 아름다움이 쌓이는데 어떻게 달라지는 게 없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하고 되묻고 싶어요. 또,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아름다움을 이렇게 쌓아놓고 있는데 어떻게 뭐가 안 달라지겠냐고, 아름다움을 주변에 쌓아두고 있는데 말이에요. 



누군가 이런 거 왜 하는 거예요? 이런 쓸 데 없는 건 왜 해요? 라고 물었다면, 저는 당신은 불만 섞인 질문부터 하기 전에, 상황을 바꾸기 위해 무얼 해봤냐고, 무엇이라도 해봤냐고 묻겠어요.



 그리고 뭐라도 해보기 위해 행동한 뒤에 남는 건(그거라도 했기 때문에)아무 것도 하지 않고 까칠하게 생각하는 것 보단 나은 일들이 찾아온다고 말 해줄 거예요. 저는 그걸 믿거든요.




스달) 우문현답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습니다. 아름다움이 도처에 쌓이는 데 어찌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 무엇이라도 해 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발견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긴다는 말씀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책을 권하는 이유- 삶을 읽어내는 하나의 방식일 뿐



스달) 그럼, 다음 질문입니다.  작가님은 책을 굉장히 사랑하는 '애독가'이자, 사람과 책을 연결하는 '북 코디네이터'로도 활약하고 계시는데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작가님께 이런 걸 궁금해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역시 조금 까칠한 질문일 수 있겠는데요(웃음)


먹고사느라, 또는 생활에 치이느라, 솔직히 책 한 자 읽는 것도 힘든 사람들(특히, 주부나 엄마)은 어떻게 책 읽기에 다가가면 좋을까요. 또 하나, 그럼에도 꼭 책을 읽어라, 해 주고픈 까닭이 있다면요?



이화정) 이런 질문도 굉장히 좋아요. 생각보다 오래 고민하지 않고 답을 드릴 수 있겠어요.(웃음) 책 한자 읽지 못할 상황에서는 책을 안 읽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읽을 수가 없죠. 책을 읽을 수 없는 상황, 책은커녕 먹고 사느라 바빠서 하루하루 건사하기 바쁜 사람에게 책 읽으라는 말은 폭력과 같다고 생각해요. 



책을 일부러 안 읽는 사람이 있고 못 읽는 사람이 있죠. 그런데 못 읽는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책이 좋아요, 책을 읽으세요, 라는 말은 굉장히 무례하고 이기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주부이자 엄마인 경우엔 하루가 너무 버겁잖아요, 아이 키우고 살림하기 바쁘고요. 그럼에도 북 코디네이터로, 책을 권하는 사람이자 책의 전파자로 말씀드린다면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어요.



그래도 하루를 보내면서 짧은 순간이라도 나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내 삶에 대해? 아니면 나의 오늘에 대해? 물론 사유의 물꼬를 트는 게 꼭 책일 필요는 없죠. 책만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고요.



 다만, 저한텐 책이 적합했고 가장 쉬운 사유의 도구였기 때문에 책을 열심히 읽었고 좋아하게 된 거고요. 



그러니까, 책을 읽어라 이전에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예를 들어, 설거지를 하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노래 가사 한 줄에 확 꽂혔다면, 그 가사의 의미를 읽을 수 있죠. 또는 내 생각을 읽을 수도 있고요.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복잡한 고민, 나는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하나?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나는 살림만 하고 있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뭐였더라? 등 여러 가지 질문들 중 하나를 잡아채서 나의 생각을 읽어내는 거예요. 드라마 속 대사도 그런 맥락이고요. 



이렇게 무언가를 계속 읽어내려는 행위면 족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었어요. 책이 아니더라도 이런 생각을 곱씹는 것도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하거든요. 결국, 책을 읽는다는 것도, 책을 위한 책 읽기가 아니라 나를 더 잘 알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게 하는, 고민하게 하는 수단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저한텐 다른 것 보다 책이 도움이 된 거예요. 그래서 저하고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 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정말 책이 좋아요, 이런 책이 괜찮아요, 하며 전하는 사람인 거죠. 누구에게나 책이 적합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고요. 



결론은 하루에 한 번 음악을 듣든, 그림을 그리든, 하늘을 한 번 쳐다보든, 책을 읽든, 계속해서 무언가 나에 대해 생각하고 중요한 의미를 읽어내려 노력하는 행위는 아무리 먹고 살기 바빠도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죠.




스달) 정말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먹고 살기 바빠도 내가 누구인지, 중요한 의미들을 항상 되새기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삶에 끌려가고 있더라고요.




이화정) 그래요. 그러니까 생각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생각하는 일이 쉬운 사람들은 설거지를 하다가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보통은 그런 훈련이 되어있지 않죠. 그러니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책을 펴보는 것 같아요. 책을 쓴 사람이 내게 계속 말을 걸고 질문하고 생각할 수 있게 이끌어 주니까요. 문장들이 눈에 보이니까 책이라는 매개물을 가지고 나의 생각을 해보려고 하는 거죠. 물론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나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이 따로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게 책인 거고요.







모든 모임은 지속적인 공동체를 위한 발판



스달) 작가님, 어쩐지 점점 속이 후련해지고 있습니다. 하하. 이번엔 사심 가득한 요구사항 같은 질문이네요. 작가님껜 작가님 뒤를 따라 걷고자 하는 많은 후배들이 있는데요, 혹시 작가님과 가까이서 소통하고, 서로 연대하는 지속적인 공동체나, 컨텐츠를 기획하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이화정) 지속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서 독서모임을 하는 거죠.(웃음) 


음. 이렇게 생각해요. 내가 어떤 공동체나 컨텐츠를 기반으로 무언가를 이어가고 싶다면, 서로 노력해야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각자가 맡아서 굴러가게 하는 무엇인가가요.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컨텐츠를 일단배우고, 그 경험담을 들어보겠다는 마음이 되어있는 사람과 무언가를 같이 했을 때 효과가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하는 모든 모임은 지속적인 독서공동체, 스스로 삶을 가꾸는 공동체라는 큰 그림 안에서 계속 연대해 가는 작업이에요. 그 중에서도 구체적인 컨텐츠로 더욱 강력한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건 글쓰기 공동체고요. 



책 문화 공동체 안에서도 좀 더 긴밀하게 소통하고 친해지고 내밀한 관계 속에 서로를 자극하며 성장하는 데 가장 좋은 건 글쓰기거든요. 글쓰기로 자기의 속내를 드러내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과정을 글 쓰는 동안 익힐 수도 있고요. 그래서 후반기엔 글쓰기 모임을 체계적으로 꾸려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어요.







상대의 마음에 가닿는 글을 쓰려면



스달) 예정에 없던 질문이긴 한데요, 글쓰기 모임 이야기를 듣다보니 ‘글쓰기 나의 총합’이란 챕터에 '글은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여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쓰신 부분이 생각나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고유한 이야기는 비교하는 것이 필요 없다고 하셨지만) 그럼에도 글쓰기에 늘 목말라 있는 분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작가님처럼 상대의 마음에 닿는 글을 쓸 수 있는지 여쭙고 싶어요.



이화정) 음. 일단 저는 상대의 마음에 가닿는 글 이전에 내가 나에 대해 탐구하는 글을 많이 써야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이게 대체 왜 슬플까, 나는 왜 이 사람에게 열이 받을까, 나는 왜 이 상황이 불편할까, 나는 왜 이 시가 좋을까 등등. 끊임없이 나에 대해 탐구하는 글을 쓰다보면 그 다음에 찾아오는 게 ‘아, 그 사람도 나 같은 마음이겠구나.’  ‘아 저 사람도 그래서 그런 행동을 했구나.’ 거든요. 



내가 내 글로 설명이 되니까 그 사람이 했던 것들이 이해가 되는 거죠. 그래서 남에게 가닿는 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단 나에 대한 것부터, 나의 감정을 그냥 내지르는 글부터 시작해서 그 감정을 가지런히 가다듬는 글, 그 다음에는 승화시키는 글. 이런 식으로 단계별로 나에 대한 글쓰기를 충분히 연습하고 난 다음에 다른 글로 넘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남을 잘 이해해야 남도 저를 이해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내가 남을 어떻게 알겠어요.(웃음) 



그러니까 글쓰기는 끊임없이 내가 나를 알고 표현하기 위해 내가 무엇인지, 내가 왜 그러는지, 그걸 설명하고 싶어 애쓰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자기와 분투하며 자기를 잘 이해하고 수용하고, 극복하기 위해 쓰는 사람들의 글을 누군가는 알아보고 거기에서 소통하게 되면, 그런 즐거움과 보람을 더 느끼고 싶어지죠.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좋은 글을 향해 자연스럽게 나아가게 되는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 첫 단계는 나를 향한 글쓰기죠. 그것이 충실해지고 풍성해지면 저절로 흘러넘쳐 남에게도 좋은 글로 다가는 거고요.



스달) 그러니까 일단, 나에 대해, 끝없이 왜? 라고 질문하며 써야겠네요.



이화정) 그렇죠. 나에 대해 모든 것을 파헤쳐 보겠어. 그리고 그걸 글로 표현해 보겠어. 이렇게 쓰는 거죠. 그 안에서 타인에 대한 분석도, 타인과 나의 이해와 사랑도, 나와 나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도 잘 다룰 수 있게 될 거에요.







인기의 비법, 세 가지



스달) 네. 글쓰기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단비가  되었을 거 같아요.  갑작스런 질문에도 흔쾌히 답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번질문은 조금 짓궂은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웃음), 작가님은 20대부터, 50대, 60대까지 다양한 층의 지지를 받고 계시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인기 비결은 무엇인지요? 입니다.



이화정) 인기가 있나요?(웃음) 가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준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과분한 사랑이다, 고마워만 하다가 생각해 보니 비결은 세 가지에요.(웃음) 



첫 번째는 내가 먼저 좋아해야지, 내가 상대방을 먼저 좋아해야지.


두 번째, 내가 더 많이 사랑하겠어. 


세 번째, 남들이 안한다면 내가 쓴 소리 해야지. 


그 역할을 하기 때문이에요.



첫 번째, 두 번째 단계를 거쳐 남들이 해주진 않지만, 그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을 해주려고 하기 때문에 저를 아끼는 사람들은 저를 좋아하고 신뢰해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자기를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걸아니까, 쓴 소리나 필요한 조언을 해줬을 때 그것이 힘들어도 잘 받아들이는 거 같아요.



스달) 맞아요. 작가님 책에도 그런 부분이 있죠. 


‘마냥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꼭 필요한 이야기를 생략한다면 그건 진심어린 관계에서 조금씩 뒤로 물러나는 게 아닐까?’(아름다움 수집 일기, 228쪽) 이 부분요. 이 챕터 읽으며 몽땅 밑줄을 그었거든요.(웃음)







아름다움 수집 일기와 찰떡궁합인 음악/영화



스달) 아름다움 수집 일기에서 다양한 책들을 소개해 주셨는데요, '타인을 위한 눈물 총량의 법칙' 챕터에는 슬프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어볼까요 미션도 있고요.  실제로 소개해 주신, 막스 리히터의 앨범이 너무 좋았어요. 앨범을 들으며 생각 하니, 작가님이 지면 관계상 다 싣지 못한, 아름다운 음악(노래)이나, 영화(영상)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이 자리에서 아름다움 수집 일기와 함께 하면 찰떡궁합이겠다, 하는 음악이나 영화가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이화정) 우선 이게 저의 노동요로 많이 듣는 곡이에요.(화면너머 음악이 흘러 나온다. 맑고 경쾌한 피아노 소리.) 영국의 피아니스트 알렉시스 프렌치(Alexis French)의 ‘드림 랜드(Dream Land)’ 라는 곡인데요. 



선율이 너무 곱고, 아름답고, 기분 좋게 하는 곡이라 글이 안 풀리거나 쭈그러져 있을 때 이 예쁜 곡을 들으면 마음이 좀 회복돼요. 특히 좋아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은 항상 기대하며 들어요. 저를 유난히 기쁘게 하고 감동시키는 부분은 반복해서 들어도 설레거든요. 



뭐랄까, 약간은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그 순간을 기다리며 재생시킨다고 할까요. 막혔던 글이 그 부분에 이르러 탁 풀렸던 경험들도 한 몫 하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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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달) 어릴 때부터 계속 마음에 남아 있다는 게 굉장히 신기해요. 그렇게 오랜 동안요.



이화정) 그러니까, 이런 것이 아름다움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자연풍경이든, 영화의 한 장면이든 의미 있는 말 한마디든, 평생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해 주는 그것이 아름다움이라고, 아름다운 경험이라고요. 각인되는 아름다움 이라고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아름답다는 말의 의미를 너무 축소해서 바라보고 있진 않나, 싶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아름다움이란 말을 아름다운 여자, 예쁘고 날씬한 유명인사로 국한하는 게 흔하니까요. 



사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압도적으로 나를 감동시키는 어떤 순간이나 장면, 풍경 같은 것들은 정말 많거든요. 그런 것들 모두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면, 아름다움이 얼마나 풍성해지겠어요.







코로나 시대, 일상을 돌보고 삶을 꾸려가는 지혜



스달) 시선을 넓히면 많은 것들이 아름다움으로 보이는 거네요. 마음에 잘 새겨두어야겠습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이제 좀 괜찮아질 줄 알았던 코로나가 다시 대유행 국면에 접어들었어요. 어쩐지 기약 없는 어둠으로 또 다시 끌려들어가는 것 같은 요즘입니다만, 이럴 때일수록, 일상을 돌보고 삶을 꾸려가는 지혜를 작가님께 구하고 싶어요.



이화정) 말 그대로, 일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침에 뉴스를 볼 때마다 화가 나고, 마스크를 쓰고 나가다가도 언제까지 써야 하나 싶고, 우울하고 어두운 생각들이 겹치죠. 



그럴 때마다 엄습하는 부정적인 생각들 사이사이에 뭔가를 하나 끼워 넣는 거예요. 오늘은 내 몸을 위해 어떤 좋은 음식을 먹을까. 세끼 중 한 끼 정도는 그렇게 먹어야지. 또는 오늘은 아침부터 너무 야만적인 말들을 들었어. 정치인들의 품위 없는 행태에 기분이 나빠졌어. 



그럴 때, 그런 말을 들은 내 귀에 좋은 문장을 들려주는 거예요. 그런 말을 들으며 계속 기분 나빠할 수 있지만, 내가 나를 돌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거죠. 좋은 글을 중화제로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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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달) 나를 존중하는 다양한 방법을 계속 찾아야겠네요.



이화정) 그럼요. 계속 연구해야죠. 나를 위해서 더 좋은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출간 후 발견한 아름다움들


이화정) 가장 근래 발견한 아름다움은 독자의 이름이에요. ‘독자 이름 수집 노트’ 요. 한 분 한 분의 독자 이름이 나의 아름다움으로 쌓여가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화정 작가님께.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독서모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은 참 친절하세요. 


-8살, OO올림-



이렇게 쓰여 있더라고요. 정말 감동스러웠어요. 제 책을 읽진 않았지만, 나를 작가님이라 불러주는 최연소 독자님이었어요.




동화책과 함께한 마법의 세계



이화정) 동화책을 열심히 읽던 아이였죠. 엄마가 큰마음 먹고 들여 주신 계몽사 전집이요.(웃음)바닥에 배 깔고 엎드려 읽을 때마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마법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중에서도 소공녀를 읽던 생각이 많이 나요.(웃음) 나에게도 아빠가 따로 있지 않을까? 친절하고 부자인 아빠가.(웃음) 그런 생각을 엄청 생생하게 하면서 읽었거든요.


*인터뷰가 너무 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본 게시글 용량의 한계로 모두 담지 못하였습니다.

인터뷰의 전문과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 주시면 확인 가능합니다.

https://blog.naver.com/daon_elly/222473027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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