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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Oct 02. 2021

{라이팅 클럽} Vol.7

요즘 푹 빠져 지내고 있어요.


이제 선선한 바람이 아침과 저녁으로 불어 와서 가을이 온 걸 실감하고 있어요. 여름보다 더 진하게 공백을 느낀 9월이 지나고서야 늦은 편지를 띄우게 되었네요. 몸이 힘들어서 그렇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고, 바쁘냐고 하면 바쁜 건 늘 그렇기에 또 그건 아니라고 웃으며 말하겠지요.      


그런데 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은 이상하게도 그 시작을 하기가 왜그리 힘든 걸까요? 하고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넘쳐 흐르려고 하니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주워 담아서 글로 옮기는 것이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아마도 욕심 때문이겠지요.     


요즘은 동화에 푹 빠져서 지내고 있어요. 동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제는 이야기가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동화책을 딸이 읽기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한 권 두 권, 그 동화책을 읽다가 예전에 읽었던 클래식 동화들에까지 시선이 가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또 클래식 동화들을 한 권씩 읽다 보니 너무나 좋더라고요. 그리고 그 동화들에 푹 빠져 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자꾸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물론, 내용은 조각이 되어 전체의 이야기가 정확하게 떠오르진 않지만 선명하게 떠오르는 부분들을 만나면 오래 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가슴이 뛰기 시작해요.     


읽을 책이 넘쳐나는 지금도 동화책을 들고 한참을 쓰다듬다가 읽기 시작하면, 그 책을 덮을 때까지 다른 책을 펼치기가 힘들어져요. 이래도 되는걸까 생각하면서도 이미 동화 속에서 저도 소녀와 소년들의 시선들을 따라 함께 가요.      


메리는 발길을 멈추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명랑하고 친근한 휘파람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정 가는 데 없는 꼬마 소녀도 외로움을 탈 수 있었다.

-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비밀의 화원> (현대문학)     


원숭이도 사라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 작은 손을 뻗어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가냘픈 갈색 손에서 느꼈던 인간의 사랑을 사라의 손에서도 느꼈던 것이다.

-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소공녀> (펭귄클래식코리아)     


저는 메리와 함께 콜린을 휠체어에 태워 비밀의 화원으로 데려갔고, 흙을 손으로 만지며 꽃 으로 뒤덮이는 화원을 바라보았죠. 사라가 갑자기 다락방으로 쫓겨 올라가서도 여전히 '사라'다움을 잊지 않았을 때, 다락방 창문 건너로 보이는 이웃집의 원숭이와 인도인 신사와 우정을 나눌 때, 아빠를 다시 만났을 때가 너무나 선명한 이미지로 내 앞에 나타났어요. 사실은 동화책을 읽는 것이 너무 좋아서, 학교에 책을 팔러 나온 아저씨가 나눠준 종이에 모두 동그라미를 치고 싶었던 소녀가 생각났어요. 분명 혼 날거라 생각하면서 관심없는 척 꾸깃구깃 접어 버렸던 아이가 내심 그 순간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친구라면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봐 그러지 않은 척, 더 신나게 어울려 놀려고만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용기가 없었죠? 그래서 동화책을 읽을 때 전 어린 소녀였던 내 모습을 만나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그 날의 나에게 다정한 안부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아요.      


요즘은 그런 생각도 해요. 동화라는 것이 어린이들을 위하는 책이라지만, 동시에 어른들 안에 있던 어린 아이들을 위하는 책들이기도 할 거라고요. 어릴 때는 동화 속 소녀, 소년과 친구가 되죠. 그리고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니 그 소녀, 소년에게 다정한 위로와 응원을 건네기도 하고 동화 속 어른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발견하기도 하였어요.       


전 이런 생각들에 동화를 다시 읽고 있는데 어른이 되어 다시 동화를 읽는 이유는 계속 추가되고 추가되어서 종이 여러 장을 채우게 될 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1년 뒤에 다시 또 동화를 읽는 어른의 마음을 이야기해볼까하고 웃으며 생각해봐요.     


언니는 요즘 무엇에 빠져 지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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