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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Aug 09. 2021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 영원한 삐삐 롱스타킹

“우리 착한 펠레야.”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서 펠레를 껴안았습니다.

“그래도 우리랑 같이 살지 않을래? 가끔 우리가 잘못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너를 무척 사랑한다.”

- ‘펠레의 가출’ 중에서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133p)


내가 좋아하는 동화의 한 부분이다.


스웨덴의 한 농가에서 태어나 여성성과 그 시대에서 요구하는 모든 것에만 따르지 않을 용기를 지닌 여성이 있었다. ‘삐삐 롱스타킹’을 탄생시키고 어린이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동화책을 내고, 폭력이 일반적인 것이었던 시대의 흐름에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며 맞서려 했다.


그녀는 평범했을 어린 시절을 지나 스스로 일을 하고, 자신이 맞닥뜨린 환경에도 굴복하지 않은 의지를 지닌 젊은 시절을 지나 작가가 되었다.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진 뒤에도 완벽한 행복이 아닌 균열이 가 있는 행복을 못 본체하지 않았다.


그녀의 삶이 그녀의 책들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그녀의 행동과 목소리, 그녀의 주변인들의 목소리, 책들의 목소리를 통해 말해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은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더듬어 올라갔다. 그녀의 삶에 마지막까지 영향을 끼친 부모님과 형제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을 마음껏 뛰어놀았었고 그런 아이들을 품고 있는 어른들의 시선까지 보여주고 있다. 기자 일을 하게 되고, 뜻하지 않게 찾아온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자신이 만나 품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순간들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그녀와 그녀를 알고 지낸 주변인들의 말들을 통해 길고 지난한 시간들을 버텨내기 위해 했을 노력들이 충분히 느껴지게 한다.


무엇보다도 삐삐롱스타킹 이야기를 처음 출판사에서 그리고 외부에서 대하는 모습들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겉으로 보이는 폭력적이고 말도 안 되는 큰 행위들에만 집착하는 시선을 거두어주길 바랐을 것이다. 조금씩 수정은 되었지만 여전히 삐삐롱스타킹은 어른들의 시선에서만은 반갑지 않은 아이였으리라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삐삐롱스타킹을 보며 자라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 만난 삐삐는, 어디서든 아이들을 대신해서 어른들에게 맞서는 아이였고,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는 아이였다. 그리고 나는 동시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다른 동화들에도 시선이 갔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녀의 동화 속 이야기들에는, 현실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하여도 다시 돌아왔다. 그것이 읽는 독자인 나에게는 또 다른 안도감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절대 작가가 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작가가 된 이후, 동화에 그녀의 애정 하였던 시절들을 그려내고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향한 마음을 녹여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녀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다시 그리운 추억의 한 부분을 그대로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블러뷔의 생활은 수많은 짜릿한 기쁨으로 가득하다. 따가운 햇살을 맞는 기쁨, 잼을 듬뿍 얹은 팬케이크를 바라볼 때 차오르는 기쁨, 첫눈이 선사하는 기쁨이란! 아이들은 어린 시절 아스트리드가 삶을 긍정했듯이 그렇게 삶을 긍정한다. 그녀는 이야기 속에 어린 시절의 충만했던 감정들을 되살려 낸다.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136p


룬드퀴스트는 자기 세대가 순응적이며 겁이 많다고 느꼈고, 그런 이유로 자신과 자신의 세대는 린드그렌의 책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해석했다. “어떤 어른이 이 모든 것을 생각해냈다는 사실, 어리다는 것이 어땠는지를 기억하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나아가 아이들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어른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103p


내가 확신하게 된 것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글 속에서, 에밀 책에 나온 알프레드 아저씨나 목사 부부처럼 아이들에게 너희들을 믿어주는 단 한 사람으로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내가 깨닫게 된 것처럼 아이들에게는 전적으로 믿고 지지해 주는 한 사람의 존재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른들도 자신의 어린 시절에서 그랬음을 기억해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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