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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Oct 23. 2021

[혜윰] 토지6 - 211022 ZOOM

<토지 1>부터 시작한 모임은 <토지 6>까지 함께 읽어오고 있다. 인물의 간단한 설명만 엮인 책이 있을 정도로 수십 명의 인물들이 나오고 그 인물 면면이 모두 다 다른 모습을 보이는 소설이다. 그 안에서는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게 하기도 하지만, 그 역사 속의 산증인과도 같은 이들의 이야기를 곁에서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매 권의 이야기에서 어쩌면 이렇게 다양하게 흐름을 이어갈 수 있는지 생각하면 박경리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커지기만 한다.


<토지 6>을 읽고 만난 우리는 매번 박경리 선생님의 글에 품은 선생님의 의지와 노력을 바라보며 존경심을 감추기 힘들다. 매번 말해도 전혀 아깝거나 지치지 않는 존경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토지 6>에서는 길상이와 서희의 감정선이 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처음으로 서희가 목도리를 집어던지며 울던 모습에서는 그렇게 냉정하고 이성적인 생각으로 다시 평사리로 돌아갈 생각, 복수심에 가득 사로잡힌 그녀의 한 꺼풀 벗겨진 모습이 보인다. 결국 사고를 당하고, 의사에게 자신의 처가 될 사람이라고 말하는 길상의 한 마디가 오래 기억에 남게 된다. 둘의 결혼을 향한 생각에서 야심만을 생각하기에는 부족한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번 6권에서는 환이와 운봉 노인, 혜관 스님의 모습들이 인상 깊고 강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상현과, 권필응, 서의돈, 임명빈 등의 젊은 사람들의 현시대를 논하는 장면 또한 그냥 가벼이 넘기기가 힘들다. 물론 이동진의 모습도 짧지만 강하게 지나간다. 자신 역시 독립을 위해 많은 시간을 공들였음에도, 김훈장을 바라보며 자신의 남은 날들, 조국의 날들을 헤아려보며 씁쓸해하는 모습, 길상이 서희와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할 때 속으로는 그러기를 바랐던 감정들이 지금까지의 이동진의 모습 중에서 가장 솔직한 모습을 내보이는 장면들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어떻게든 살아 내려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이 조국 땅이 아닌 곳이었기에 조금 더 현실을 바라보며 독립운동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도 있었겠다고 미루어 짐작을 하였다. 실제로 이 시대를 살았던 이들과 100년 뒤 후손들이 바라보는 모습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깊이, 더 크게 다른 모습이었겠다고 함께 생각하였다. 박경리 선생님이 여러 각도에서 여러 사람의 입장을 세심하게 바라봤음을 뒤로 갈수록 더 강하게 느끼고 있는 부분도 쉽게 넘기기 힘든 사실이다.


토지가 6권에 이르기까지 서희의 내면 독백, 감정은 많이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6권에서 서희를 더 깊이 지켜볼 수 있게 하였다. 5세가 되었을 무렵 자신의 어머니인 별당 아씨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기에도 부족할 때 자신을 버리고 구천이와 도망을 간 어머니의 존재는, 어쩌면 족쇄처럼 서희를 오랫동안 옥죄어 왔는지도 모른다.


'고아 같다. 뭐 언제는 내가 고아 아니었었나? 그렇지만 더욱더 고아 같다.'

못에 매달린 목도리를 보았을 때 서희는 여자를 집에 데려다 놓고 길상에게 고통을 주려니 생각했었다. 길상이 자기를 낯선 여관에다 내버려 두고 여자 집을 찾아간 행위가 애정 없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 그 무자비한 감정을 무엇이 풀어놨나. 풀린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서희는 스스로, 자기 자신마저 질곡에서 풀어버린 것이다.

- 토지 6 120p


서희뿐일까. 하인 하나하나의 모습과 행동까지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다. 어느 한 사람에 집중하지 않고 많은 다양한 인물들을 다루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셨을까 생각해 보게도 하였다는 모임 원의 말씀이 오래 남는다.


서희에게 어쩌면 자신이 말하거나 자신이 행동하지 못했기에 더 아쉽고 오래 여한에 남았을지도 모르는 여성상을 투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하며 우리는 내년을 가득 채워서 완독하게 될 날을 차근히 기다린다.


자기 몸가짐이 허물어져 가는 것 같다. 팔난봉으로 히죽히죽 풀려나가는 것 같다. 딱딱한 고치에서 빠져나자 훨훨 나는 나비가 되는 것 같다. 아니 그보다 높은 봉우리를 향해 쇠 부채 같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한 마리의 솔개 같은 생각이 든다. 그 영악한 눈알과 발톱을, 전율하는 힘을, 심장을 쪼아먹는 그 구부러진 주둥이를, 도시 운명은 어디 있단 말인가, 평화는 어디 있고 행복은 어디 있고 사랑은 또 어디 있는가, 심장을 쪼개어 바쳐질 그것들은 도시 어디에 있는가... 싸움이 있을 뿐이다. 자기 자신과의. - 22p


내외가 함께, 그리고 유복한 살림이건만, 귀화하여 보장되고 약속받은 터전이건만 이민족 속의 우리, 이민족 속의 나, 그 의식이 그들만의 것은 아니다. 흘러온 수만 이곳 조선인들의 사무친 슬픔이다. 늙어 쇠잔해졌고 단신의 김훈장의 경우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모시올 같은 수염을 흔들며 치매 같은 꼴을 하고 앉아 있는 김훈장이 미구에 찾아올 자기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고국 땅을 다시 밟을 희망이 없는 늙은이. 담뱃대를 물고 큰 기침을 하며 마을 길을 거닐어볼 꿈조차 꾸어볼 수 없는 늙은이. 십 년 이십 년 후의 자기 자신은 아니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십 년을 보내고 나면 독립이 될까? 기약이 없다. 영영, 어쩌면 영원히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있는 자기 자신은 한낱 어릿광대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최치수 그는 꿈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던 영악하고 강인한 인간이었는지 모른다. 사방팔방이 절망의 두터운 벽으로 둘러싸여져 있다. 길림으로 간다지만 아홉 마리 소 중의 터럭 하나만큼이나 도움이 될는지. 제 집에 불이 났는데 남의 집 불을 꺼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 73~

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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