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겁이 참 많았다. 학교를 벗어나면 길을 잃어버릴까 봐 늘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산도 바다도 많은 부산이어서 학교에서 가는 소풍 장소는 주로 산이 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소풍 후 내려오는데 나뭇가지에 나의 점퍼가 걸려버렸다. 나는 점퍼보다 친구들을 놓치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친구들을 놓칠까 봐 옷을 버리고 서둘러 내려갔다. 그런데 그 옷을 1학년 때 담임이었던 선생님이 챙겨서 집까지 가져다주셨다. 지금까지도 그 해프닝은 우리 집의 단골 이야깃거리이다.
우리 식구들은 모두 덜렁대는 성격 탓이라고 말했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점퍼를 버리고서라도 친구들을 따라간 것은 나의 조바심 때문이었다. 바로 집 근처의 산이어도 길을 잃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조바심은 학교에서 수학여행이나 소풍을 갈 때 규칙을 철저히 따르고 내가 아는 이들을 꼭 내 시선에 두어야 하는 강박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런 내가 20대에 홀로 서울로 올라왔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보지만 젊은 날의 객기가 아니었나 싶다. 누군가 곁에 있어야만 했던 내가 낯선 곳에서 회사를 다니고, 이직을 하고, 홀로 많은 것을 결정하는 사람이 되어 갔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두려움과 조바심이 다시 떠올랐다. 선명하게 그려진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 잘 웃고 씩씩한 사람이 되었다. 두려워하는 어린아이 같은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나에게 정답을 말해주는 이는 없었다. 나는 눈에 보이는 길도 모르는 곳이라면 절대 가지 않았다. 지도에 그려지지 않은 ‘미래’도 나에게는 모르는 길이었다. 미래에 대한 막막함은 어떤 대답이라도 듣고 싶게 하였다. 삼십 대에 들어서면 선명한 길 위를 걸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나에게는 꿈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손에 착 감길 정도로 작은 책을 만났다. 이내라는 가수가 적었다는데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하지만 책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는 이미 내 손안에 들어와 있었다. 내가 하는 모든 시도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때의 나는 이제껏 해 온 시도가 작게 느껴져 움츠러들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집에 가자마자 망설임 없이 바로 펼쳐 읽었다.
그 책은 나를 향해 활짝 펼쳐졌다. ‘뭐라도 일단 하다 보면 다음 걸음 정도는 내디딜 수 있을 거라고 믿어(책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본 작가의 이야기는 신호탄이었다. 앞일을 생각하면 늘 적요롭던 마음이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책에 시선을 둔 채 책과 함께 샀던 이내 작가의 음악이 든 시디를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가만히 듣다가 리플레이 버튼을 여러 번 눌렀다. 가사집을 열어 가사를 읽자마자 가슴 한구석이 뭉근해졌다. 그때 들었던 노래 중에 ‘지금, 여기’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지금, 여기 -이내
새로운 문이 열릴 때 두려워하지 않기를
마음을 열어올 때 그대로 볼 수 있기를
내가 외울 수 있는 유일한 주문 - 지금, 여기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주문 - 우리, 함께
내가 외울 수 있는 유일한 주문 - 사람, 사랑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주문 - 지금, 여기
슬픔이 찾아올 때에 끝까지 바라보기를
용기가 바닥날 때도 한 걸음 내어 딛기를
내가 외울 수 있는 유일한 주문 - 지금, 여기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주문 - 우리, 함께
내가 외울 수 있는 유일한 주문 - 사람, 사랑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주문 - 지금, 여기
노래를 즐겨 듣지 않지만 이 노래는 몇 년이 지나도 제목과 음이 그대로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앞으로 갈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게 하는 주문, 나의 앞날이 괜찮을 수 있게 만드는 주문을 찾아 헤맸는지도 모른다. 길을 잃을까 봐 아이들의 가장 앞에 서서 선생님 손을 놓지 않으려 했던 어린 소녀가 눈을 반짝였다. 그 소녀는 친구들의 뒷모습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고 뛰다시피 했다. 이미 다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몸을 작게 웅크리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 어린 소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잠시 멈출 때도 있었지만 쉬어가더라도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다. 처음 가는 낯선 길은 이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새이로운(새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경험들 덕분에 두려워서 가졌던 경계심이 조금씩 눅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처음 가보는 길일지라도 스스로 용기 내어 걸어가려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를 닮은 이들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이 이야기를 꺼내어 썼다. 쑥스러워서 속으로 꽁꽁 감춰둔 이야기들을 꺼내도 나의 존재는 작아지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용기 낸 모든 걸음들은 헛되지 않다. 새로운 문이 열릴 때, 슬픔이 찾아오거나 용기가 바닥날 때 다시 일어서게 하는 주문을 기억해 내면 좋겠다. 찾아 헤매는 정답이 멀리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지금, 여기’ 내 곁에 있는 것들이었다. 나를 보고 용기 내어 걷는 걸음들이 지구에 발자국들을 새길 수 있으면 얼마나 멋질까. 걸음의 보폭이 작아도 그 한걸음에 누구보다도 귀한 가치가 스며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