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커피는,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허름한 자판기 앞에 서서 '믹스커피' 버튼을 눌러 조그만 종이컵에 담겨 나온 것이었다.
겨우 200원만 있으면 윙 소리와 함께 김이 나지만 적당히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나왔다. 차가운 공기에 얼어버린 손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처음으로 허락받지 않고 먹어 본 어른의 맛이었다. 생각보다 달콤해서 놀랐다. 어린이였을 때도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던 생각이 별로 없었던 나는 이 믹스커피를 맛보고 어른이 되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다. 겨우 200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당시 돈의 쓰임은 학용품, 문제집, 노트. 떡볶이나 호떡을 사는 것이 다였다. 어른들이 자판기 커피를 뽑아 먹는 모습이 부러웠을까. 딱히 잠이 와서라기 보다 흉내를 내고 싶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수능을 준비하면서 독서실에서 공부할 때도 믹스커피를 한 잔씩 마시곤 했다. 친구와 휴게실에서 믹스커피를 마시며 쉴 때의 달콤함이 좋았다. 그럴 때마다 친구와 함께 수능을 보고 '어른'이라고 불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막연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커피의 맛은 휴식의 맛이었고, 꿀이 들어있을 리 만무하지만 (물론 설탕이 들어 있었지만) 여느 음료수보다 더 달달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더 이상 자판기에서 뽑아 먹지 않았다. 카페를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더라도 조그만 컵에 담겨 나오는 커피를 마시는 것이 직장인이 가질 수 있는 사치 중 하나였다. 그때는 늘 바닐라 라테를 시켜 먹었다. 달달해서 오전에 직장 상사에게 들은 쓴소리를 잊는 맛이었다. 아이를 갖고, 당분간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감이 따르는지 실감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품은 생명을 위하고 싶었다. 아이가 태어나서도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다시 바닐라 라테를 먹었다. 하지만 결혼 전에 마셨던 바닐라 라테와 달랐다. 얼마 가지 않아 아메리카노만 먹기 시작했다. 마실 때마다 처음은 씁쓸한 한 모금을 느꼈고 뒤로 갈수록 묽어지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향을 음미했다.
커피를 마시는 취향처럼 나도 참 많이 바뀌었다. 커피와 책, 노트로도 몇 시간이고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달콤하지 않아도 좋은 카페를 다녔던 날의 풍경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적당히 톤 다운된 조명과 크지 않은 소리로 흐르는 음악이면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커피의 맛이 쓴 느낌이 오래 머물지 않으면 된다.
여전히 노트북이나 패드를 사용하는 것보다 종이 위에 쓰는 것이 좋은 사람이다. 지나 간 글을 찾느라 종이를 앞뒤로 넘겨 볼 때의 사그락 거리는 느낌이 좋다. 아날로그를 고수하는 사람. 왼쪽에 쓰는 것이 불편해지면 포스트잇이나 메모지에 글을 옮겨 적고 붙이면 그만이다. 요즘은 가을에 들어야 하는 수업을 위해서도 미리 필요한 단편들을 읽고 있다. 같은 작가가 쓴 글에서도 전혀 다른 결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순간이 더 색다르게 여겨져서 내가 쓴 글을 다시 보거나 미처 옮겨 적지 못한 부분을 찾아서 읽는다. 글을 잘 쓰는 것으로도 부럽지만 곧 이런 글을 읽고 좋아하는 나라서 다행이다. 언제까지나 마음껏 취향을 누리고, 계속 읽고 쓰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흰머리가 검은 머리를 덮게 되더라도 읽고 쓸 수만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