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끝나지 않지.
문학의 향유자, 리베카 솔닛의 두 번째 동화이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아니라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라는 타이틀은 전작 <해방자 신데렐라>처럼 어떤 감정의 분출을 느끼게 할지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흔히 형만 한 아우 없다지만, 나에게는 전작을 뛰어넘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로 시작해 '이야기'로 끝나는 동화였기 때문에 읽고 또 읽어도 지치지 않을 것이다.
'아이다'라는 공주의 이름, 이 공주의 이야기는 공주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부모, 부모의 부모.. 그 위를 거슬러 올라가는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들이 이어져서 내려온 것을 이야기의 시작점에 말한다. 아이다도 '그 이후로 공주와 왕자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것이 아닌 다른 이야기로 이어질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모티브는 같지만, - 아이의 생일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요정의 분노는 곧 저주로 이 공주에게 내려졌고 그나마 그 저주를 다른 요정들이 약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 - 아이다에게 동생이 있었고 왕자는 흔하게 구하러 온 용감한 기사가 아니라 우연히 독수리에 의해 공주가 잠에서 깰 때 도착해 함께 궁으로 돌아가는 것. 공주가 잠들 때 모두가 잠드는 것이 아니라 공주의 세계와 달리 그 밖의 세계는 여전히 세월을 거스르지 못하고 늙고, 죽어가는 이야기. 하지만 그럼에도 잊히지 않는 이야기로 '아이다 공주'는 여전히 잠든 속에서 '꿈'을 꾸며 그녀만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야기.
아이다의 동생이었던 마야는 아이다가 잠든 사이에 나이를 먹어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고 할머니가 된 동생과 여전히 열다섯 소녀의 모습으로 재회하는 장면은 이상하게도 어색함보다 자연스러움이 느껴져 생소한 느낌을 받기도 하였다.
이야기로 시작하는 만큼, 그 세 사람 (아이다, 마야, 소년 아틀라스-가난한 아이-)이 만나는 장면에서 서로의 이야기는 얽히고 얽혀서 이해하게까지 시간은 걸리지만 결국 그들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은 세월, 상황 모두를 넘어서는 '이야기의 힘'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세 사람이 재회의 순간을 만끽할 때 찾아온 목요일 요정에게 세 사람이 서로의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한 페이지에서 세 갈래로 나눠져 함께 시작되고 끝난다. 서로의 이야기가 얽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나는 받아들였다.
이야기의 막이 끝나는 듯한 그 시점에, 그곳에 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르 땅에 사는 아이들은 이야기꾼에게 조르곤 했어.
"체리 파이 이야기해 주세요!
잠자는 공주 이야기이면서
깨어 있는 공주 이야기이면서
아틀라스와 불새 이야기요."
세 가지 이야기, 어쩌면 네 가지 이야기가 아이다와 아틀라스가 사다리를 만들 때 아이다의 머리카락처럼 한데 땋였어. 그 주위에 또 엄청나게 많은 다른 이야기들이 얽혀 있지.
무슨 소식 있어, 나팔꽃? 여러분 주위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니?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 - 혹은 옛날 옛날 열한 옛날에> 중에서
내가 '이야기'에 매료당한 상태로 몇 년이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내가 가장 최근이라고 생각한 시점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이지만 사실 돌이켜보면 자꾸 거슬러 올라가서 어린 소녀였던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어찌 보면 세상에 사소한 이야기는 없다. 사람의 삶에는 어느 구석이든 다른 사람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영웅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몰살되다시피 하는 장면이 쏟아져 나오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볼 때면 언제나 마음이 불편했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큰 이야기도 당연히 해야겠지만 작은 슬픔, 작은 기쁨, 작은 아픔을 이야기하는 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읽는 삶 만드는 삶-책은 나를 나는 책을> 중에서
오래전에 만났지만 여전히 내 삶을 가장 많이 이끌었던 책을 고른다면 늘 제일 처음 언급되곤 했다. 이 글에 기댔고, 용기를 냈고 그 용기 내고 기댄 마음이 지금까지 왔다. 작은 발걸음이라 티가 나지 않고 떠들썩하고 큰 변화도 없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걸어가고 있으리라.
많은 이들이 '작가'가 되고 싶은 거냐고 물을 때 그저 책을 내는 작가라기 보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어떤 것을 쓰고 싶냐고 할 때 나도 몰랐기 때문에 두루뭉술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내가 잘 쓸 수 있는 글'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혹은 전혀 생각지 못한 장르일지 모르지만 무슨 글이든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 이야기에 누군가가 기댈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쓴다면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글감들을 모으거나 나의 쓰는 자취를 스스로 확인하고 싶어서 쓰고 있는 노트이다. 빈칸이 많지만 이 노트가 1년, 2년, 3년..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넘쳐흐르는 글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