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우연한 호기심이 생각지 못한 모험으로 이끌어 더 큰 성취감과 함께 배움을 준다. 인생이 계획된 대로만 흘러간다면 얼마나 안정적이고, 편안할까.
하지만 그런 편안한 생활을 모는 빠져나오려고 한다. 할아버지 댁에 가야 한다는 것은 모에게 또 다른 모험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니 어찌 그냥 모른척할 수 있었을까.
그 길에서 책에 푹 빠지길 원하는 작가 원숭이를 만나고, 지친 모가 결국 집에 돌아가고 싶어 울음이 터졌을 때 다정한 할머니 거북이를 만난다. 모는 모든 작은 생물들을 다치지 않게 자신의 걸음도 조심히 걷는 사려 깊은 고양이이다. 자신이 다른 생명보다 크다고 자신의 삶만이 중요할까. 모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물에 떠다닐 땐 '행복해'라며 잠시 심부름을 잊고 있다가 지도가 젖어 버리기도 하지만 그런 실수쯤은 누구나 하지 않을까. 그래서 웃음이 났다가도 어쩌나 싶은 마음으로 모의 걸음을 함께 따라간다.
이 어린아이들은, 곧 어른인 나조차 어린아이처럼 울고 싶을 때가 있음을 돌이켜 생각하게 했다. '우앙'하고 울어버릴 때 차라리 속이 시원해지는 건 이 동화를 보는 어른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얘들아, 울지 마라. 도저히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에는 도움을 청하면 되지요."라는 거북이 할머니의 다정한 한 마디는, 나에게 건네는 말인 것 같아서 괜히 울컥하고 만다.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 되었을 때, 홀로 나와 자취를 할 때의 버거움이 떠올랐다. 자유와 책임은 비례했다. 자유가 주어지는 만큼 나의 책임은 더 크게 돌아왔다. 때로는 정말 다 그만두고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모의 할아버지가 모에게 "포기하지 않으면 다 방법이 있지"라고 말할 때에는 나 역시 똑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완벽하지 않아도 결국 내가 다시 일어서서 나아갈 수 있는 곳은 보였다. 아무리 작은 문이라도 말이다. 모든 아이들이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조금은 실패도 해 보고, 맨땅에 굴러보기도 하면서 상처도 받고 흉터도 남을지언정 결국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니까"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이것은 나에게 말하는 주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는 새로운 시작, 내가 전혀 몰랐던 것을 향해 가고 있다.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걷는 것으로 충분할까 생각도 하고 더 빨리 새로운 문화를 접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나를 채찍질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쉽게 '포기만은' 않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는다. 쉬운 것은 어디에도 없는 법이다. 다만 내가 걸어가는 길의 끝에 있는 내가 생각하는 신념이 흐물거리다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