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편지지를 고르고, 편지를 써야겠습니다.
사라진 것들을 저는 그리워하는 것일까요? 혹은 다만 향수라고 부르는 것에 그치는 것일까요?
저는 사라진 것들을 이야기하기에 아직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어리숙한 행동이 그들을 나에게서 멀어지게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은 저를 향한 자책으로 이어지곤 하지요.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똑같이 평행선 위를 걸어가듯 좁혀지거나 넓어지지 않는 사이라는 것도 없다는 것 역시 알면서도 지난 시절을 회상하면 아쉬움의 감정이 지배하는 것을 느낍니다.
갑자기 사라진 이들. 곁에 있어도 이전의 그 존재는 다른 존재로 변하기도 합니다. 사라진 것은 다만 사람뿐 아니라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도 포함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인지 너무 좋은 시절에는 그 시절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아서 미리 걱정하기도 합니다. 너무 앞서갔을지 모르지만, 마냥 같지 않은 공기의 온도가 느껴지면 마음은 미리 체념하고 맙니다. 그럼에도, 그 시절에 존재해야만 하는 것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해도, 나라는 존재도 역시 그런 것일 테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고 속으로 말합니다.
콘치타 데 그레고리오가 '부재한 이들을 다시 불러내는 일'을 시작합니다. 그 곁에서 어쩌면 이건 같은 사람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글과 뗄 수 없는 그림을 그린 베아트리체 알레마냐도 어쩌면 같은 일을 시작했을 겁니다.
사실 저도 가끔 이전에 함께 뛰어놀았던 이들을 떠올립니다. 그들도 역시 지금의 나처럼 마흔 중반 즈음일 테고, (어쩌면 더 많은 나이를 지나고 있을 이들도 있고요) 어린아이였던 혹은 제가 존재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까요?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가끔 꿈에서 만날 때도 있는 이들에게는 언젠가 소식이 서로 닿고, 웃으며 만날 수 있는 날도 오게 될까 생각하곤 합니다.
이런 생각들이 들면 지금 제 곁의 존재들에게 한없는 애정을 품게 됩니다. 생각보다 여전히 표현에 서툴러서 마음만 앞서는 순간이 더 많은데 올해는 편지를 많이 쓰고 싶습니다.
실비아에게 편지를 쓰지만 답장은 오지 않아. 실비아 말처럼 다섯 해를 넘겨서일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단념하지 않아. 나에게는 실비아의 '5년의 법칙'이 통하지 않거든. 여전히 나는 그녀가 그립고 매일 생각나서 계속 편지를 써. 언젠가는 실비아의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지.
콘치타 데 그레고리오,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
주말에는 편지지를 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