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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Oct 15. 2019

할머니 나의 할머니


눈이 시리도록 빛나고 공기가 내보이는 온기도 그만하면 딱 좋을 날이었다. 가벼운 소풍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전화를 받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고 짐을 서둘러 챙기면서도 심장은 끊임없이 쿵쾅거렸고 손은 떨려오고 애써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던 그 감정만은 고스란히 아직도 남아있다.


할머니의 환한 웃음에 목부터 매고 한 번이라도 더 뵙지 못했던 날, 마지막으로 뵙고 올라올 때 몸이 아팠던 기억만 나는데, 아직은 아닐 거라고 소풍 다녀오듯이 다녀왔는데 한 번이라도 더 만나서 안아주고 손을 잡아 줄 걸 그랬다. 얼마나 많이 한 생각이었는지.




햇살의 뜨거움이 나의 두근거리는 설렘보다 더 강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외갓집 나들이.

여름 방학 때마다 외갓집으로 언니와 나는 며칠 동안 방학의 일부 날들을 보내고 왔다. 엄하게도 기억되던 외숙모에게서 서예를 배우면서 너무나 즐거웠기에 여전히 글자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고, 사촌언니와 사촌오빠와 근처 개울에서 놀던 기억들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 기능을 마음껏 눌러보면서 노래도 녹음하며 놀았던 기억들, 그리고 늘 외갓집과 함께 떠오르는 할머니. 우리 할머니.


내가 가면 늘, 할머니는 언제나 내 등을 쓰다듬으며 내 손을 잡으며 우리 강아지가 참 착하고 속 깊은 아이라며, 나는 기억들의 조각을 완전체로 만들기조차 어려운 기억 속 이야기를 하신다. 시장을 함께 손잡고 다녀오는 길에 버스에서 멀미가 났던 할머니를 내가 나의 작은 무릎을 내어주며 힘이 되어주었노라고. 예쁘고 착하고 속 깊었다고 한결같이 말씀하시곤 했다.


할머니는 손녀가 왔다며 언제나 호박 이파리를 쪄서 가득 차려주곤 하셨고, 자반김을 가득해서 먹이시고. 옛날 사람의 이야기를 해 주시곤 하셨고 나는 눈을 빛내며 듣고, 여전히 기억하는 이야기들. 주름진 손이지만 너무나 따뜻했었고 품이 너무 좋았는데.


어느새 그 손녀는 자라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되었고, 그 시간만큼 할머니의 몸은 약해져 갔다. 약해진 몸에도 나를 보는 당신의 눈에는 나를 오래 담아두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지곤 했고 금세 눈물이 고여서 촉촉해지곤 하였다. 소녀처럼. 나의 마지막 할머니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곱고 아름다운 할머니.


여전히 생각만 해도 금방 목이 메곤 했고 할머니가 생각난다는 말조차 한 마디하고 금방 목으로 울컥 넘어올 것 같은 감정의 일렁임에 금세 다른 이야기로 바꿀 수밖에.


애써 웃으면서 헤어졌지만 한 번이라도 더 할머니를 보고 싶었는데.


영혼이나 미신 같은 것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지만, 할머니만은 내가 힘들 때 내 등을 쓰다듬고 계시리라 믿는,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 


이렇게 마음껏, 할머니를 기억하는 지금 또 목이 금방 막히는, 그 느낌이 계속되지만. 그래도 언젠가 이렇게 할머니를 글자들의 힘을 빌려 또 기억하고 싶었다.




할머니, 나의 할머니.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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