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 7. 매듭
당신의 삶은 스산했다. 나는 하나씩 툭툭 튀어나오던 시련들을 헤치고 나아가 삶의 다음 단계에 이르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움직였다. 그럴 수 있음을, 스산함은 그저 지나가는 비바람 같은 것임을 알 만한 나이였지만, 그럼에도 그 스산함은 빨리 지나가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다시 만들어지고 있었고, 바로 앞의 시련들이 지난 다음에 찾아온 그 변화의 시기는 나름 적절했던 것 같다.
<멀고도 가까운> 178p
'스산함'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곤 하던 외로움과 상실감이 오히려 삶의 선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다.
그녀의 사유의 깊이와 글들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서 '에세이'가 이럴 수 있나 싶었으니
에세이라기보다 대단한 작가의 책.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감정을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에세이'가 맞고, 그녀의 진실한 생각이 담긴 사유의 글이다.
예전보다 조금 더 편히 읽히기 시작한 건 글이 편해질 만큼 쉽게 느껴진다기보다
그녀를 대단한 작가가 아닌 한 사람으로 생각하여 마주하고 글 속으로 아주 몰입되어 읽기 시작해서겠지.
내가 아픔을 겪지 않아도 아픔을 겪는 이들이 주위에 있는 것은
나에게 하루하루가 더 내딛기 힘들게 할 만큼 수많은 감정에 소용돌이치게 한다.
먹다가도 목이 막힐 것처럼 그 맛과 분위기를 온전히 소화해내지 못한다
겨우 버티고 집에 돌아와서는 기진맥진, 다음 날까지도 온몸의 힘이 풀려버린다.
하루 종일 빈혈이 나를 따라다닌다.
티 나지 않게, 내 몸은 나만 알라며 톡톡 나를 건드린다.
'스산함'의 감정을 지금 나는 그렇게 또 느끼고 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꼭 주고 싶어 하는 선물들이 있고, 때론 빚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기도 한다.
(...) 서로 빚을 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었고, 그런 주고받음이 불완전하게나마 계속 이어지며 공동체는 유지되었다.
<멀고도 가까운> 180p
우리가 각자 뒤에 남긴 그 긴 선을 바라보는 걸 나는 좋아한다. 가끔은 나의 삶도 그런 식으로 상상해본다. 마치 한 걸음 한 걸음이 바느질의 한 땀 한 땀인 것처럼, 마치 내가 바늘이 되어,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내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 세상이 꿰매지고 있는 것 같은 상상. 다른 이들이 만들어내는 길과 교차하기도 하면서, 비록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방식으로 그 모든 길이 누비 이불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로 엮인다. 꾸불꾸불한 선이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하나로 합쳐나가는 것이, 마치 그 걸음이 바느질이고, 바느질은 곧 이야기를 하는 과정이며, 그 이야기가 바로 당신의 삶인 것이다.
<멀고도 가까운> 193p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은 또 홀로 있기를 원하는 감정을 느낀다.
철저하게 홀로 있고 싶어져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수십 번.
내가 남긴 긴 선이 너무 꾸불꾸불하게 보이고 약해 보이고 다른 사람들과 맞닿아있지 않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은 나를 철저하게 고독함 속으로 밀어 넣어버리곤 한다.
모든 사람과 이어지고 싶으면서, 그와 나의 감정이 다른 걸 알고는
예전의 모습과 벗어나버린 현재의 모습에서 수없이 많이 나를 질책하고 만다.
엇갈려간 수많은 인연을 하나하나 불러 세우면 그 순간 나로 인해 모든 것이 진행된 것 같은 생각에
죄책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두렵다 그 순간이 느껴지는 것은.
그럼에도 내 곁에 있는 이들의 모습과, 나를 일으켜 세우는 말들은 그 순간을 잊게 만든다.
나는 어떤 걸음으로 지금까지 내 뒤에 보이는 길들을 걸어왔고 어떤 이야기를 새겨왔는지.
너무 희미해서 보이지 않는다 해도, 의미 없었다고 할지라도
일단은 또 한 걸음씩 떼어볼 수밖에 없겠다.
그 걸음이 의미 있게 새겨질지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