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 9. 숨
아픈 사람과 노인, 죽어가는 사람을 본다. 그런 광경이 우리 안에 쌓이고, 어느 시점에선가 우리의 삶이 바뀐다.
...
삶에서 우리는 무언가와 거리를 두고, 되돌아가고, 결심하고, 다시 시도하고, 머췄다가 다시 출발하고,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나아간다. 변화는 대부분 천천히 이루어진다. 내 인생에는 변화를 일으킨 여러 사건이 있었고, 갑작스러운 깨달음이나 위기도 있었다. 루비콘 강을 한두 번 건너기도 했지만, 대체로 무언가를 쌓아가고 있다.
<멀고도 가까운> 259~260p
이 문장이 그리웠던 것일까.
이 문장은 오랫동안 나를 잡아두었다.
도대체 나는 어디쯤 와 있는지 모르겠고,
결국에는 도태되고 마는 요즘을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두려움의 감정이 계속 앞서고 있다.
무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생각만으로도 호기롭게 도전했던 수많은 일들이
마치 물거품이 되어서 사라지는 것 같은, 신기루를 보는 것 같은 거다.
어린 갓난아기를 안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울렸다가 달랬다가 겨우겨우 진땀 빼는 엄마가 된 것처럼.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무수히 많은 생각들을 계속 정리해 나가고 있지만
결국은, 잘 살아내고 싶다는 하나의 목표로 향해가니.
언젠가 그 무수히 많은 길들 끝에 만날 수 있겠지.
한숨 돌리고 또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겠지.
아직은 막연함이 아홉 스푼, 믿음이 한 스푼.
믿음 한 스푼이어도 기꺼이 그 믿음을 모두 털어내서라도 해 나가야겠지.
"일단 어느 정도 수련을 하고 나면, 급격히 남다른 성과를 내는 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아주 열심히 노력 한다고 해도 늘 조금씩만 나아진다. 젖을 걸 알고 소나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는 다르다. 안개 안에 있으면 몸이 젖어 가는 줄을 모르지만, 계속 그렇게 걷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젖어드는 것이다."
-선 사상의 스승, 순류 스즈키 로시
<멀고도 가까운> 26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