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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Oct 30. 2019

'엄마'라는 단어가 수분을 머금는 순간.

*엄마를 위한 글에는, 예쁜 꽃 사진을 꼭 넣고 싶었다.



엄마에서 친정엄마라고 불리기 시작하면 '엄마'라는 단어는 일정량의 수분을 머금게 된다.


결혼을 하기 전에도 서울에서 홀로 지내왔는데 (그래서 여행 가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부산 집으로 달려가곤 했었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 시댁을 들러서 친정집으로 가게 된다. 그 길은 여전히 익숙함보다 낯선 시간을 건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누가 본다면 해외에서 살다 온 사람인 것 마냥 문을 열고 얼른 엄마 품으로 달려가 안긴다. 수학여행 다녀온 여고생. 우연주처럼. - 엄마의 뭉툭한 손이 내 등을 쓰다듬고 내 몸이 엄마의 푹신함에 기대게 되면 내 체온은 금방 따뜻해져 간다. 내 감정도 함께.


1년 동안 겨우 두세 번 오는 친정집. 우리 집. 우리 집은 엄마의 모습으로 날 맞아준다. 내가 지내던 작은 방문을 열면 비록 내가 지내던 침대와 책상은 이제 없어도 이 공간에서 지내던 나의 어린 시절, 소녀 시절, 아가씨 시절이 떠오른다. 우리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깔아놓았을 요와 이불은 푹신하고 포근한 엄마품을 그대로 닮아 있다.


어린 시절 언니와 다투면 엄마는 우리 둘을 다그침 끝에 늘 말씀하셨다. 엄마와 아빠가 안 계실 때 언니는 엄마의 대신이라고. 언니에겐 네가 엄마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락. 나에겐 늙지 않을 것 같은 늘 젊고 예쁜 엄마였으니 이 말이 너무 싫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언니와 얼른 화해를 하고 만다. 이제는 이 말이 마음 아리게, 너무나 아리게 한다. 자신의 존재가 없다 해도 우리가 서로를 의지하며 외롭지 않게 지내기를 바라셨겠지.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언제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 어느 날, 우연히 엄마의 화장대 서랍에서 알록달록한 편지 더미들을 한 움큼 찾아냈다. 내가 글을 배우고 엄마에게 또박또박 쓴 편지들이었다. 철없던 막내딸은 애정 편지를 가장해서 갖고 싶은 물건이나 원하는 걸 적은 '소원 편지'들을 써서 마치 그것이 소원을 이뤄지게 하는 마법의 힘이 있다고 믿었던 그 간절함으로 엄마에게 드리곤 하였다. 원하는 게 있을 때만 편지 쓰냐며 웃으시더니 그걸 버리지도 않으셨나 보다. 지금도 웃으면서 우리 가족 중에서 제일 글도 잘 쓰고, 나는 기억에도 없는 어린 시절 글쓰기로 칭찬받았었다며 벌써부터 최고의 팬이 되겠다고 자처하신다.


내가 서른이 되고 아이를 갖게 되고 무탈하게 낳아서 키우게 된 것이 7년을 넘어가고 있고, 내가 마주하게 되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과 엄마의 모습이 드문드문 함께 오버랩되듯이 선명하게 떠올라서 놀라곤 한다.


키가 작아서 애를 태우던 지금의 나보다 더 젊었을 엄마.

아가 때 탈장 수술을 받아야 해서 입원했을 때 나와 입원실에서 레고 장난감으로 전화놀이를 수십 번 하며 놀아주던 엄마. (그래서 입원, 수술이 무서운 건 줄도 몰랐던 꼬마 우연주가 보인다.)

아가 때부터 안경을 써야 했던 날 데리고 유명한 안과병원을 전전했던 엄마.

교정치료를 받아야 했던 내가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날엔 내내 나를 들여다보시던 엄마.

감기에 걸리면 나보다 더 잠을 이루지 모했던 엄마.

그냥 내게 보이던 눈빛과 엄마의 그때 감정이 이제야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우스갯소리로 아이가 아기를 낳았구나 하시던 엄마. 안 그래도 엄마에겐 마음 한편에 안쓰럽고 늘 곁에 두어도 모자를 딸일 텐데, 멀리 떨어져 지내면서 고군분투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시겠지.


명절 때마다 혹은 그 외의 날, 하루 이틀만 지내고 오거나 더 오래 지내고 오면 떠나올 땐 늘 그렇게 서운하고 아쉽다는 엄마다. 더 잘 챙겨주지 못한 것이 내내 기억에 남는다고 하신다. 계속 한 가득, 가방이 터져 나갈 정도로 챙겨주시면서, 웃으면서 우리를 보내시면서도 서운함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져서 헤어질 땐 나도 모르게 더 덤덤하게 서두르게 된다. 막상 집으로 올라오는 긴 시간에는 여전히 엄마와 헤어지지 않은 내가 있다.


막내딸은 엄마가 나이 들어서 할머니가 되어도 엄마 눈엔 늘 아기 같다고 한다. 엄마도 그럴 거라면서 날 보시는데 나도 이젠 아이 엄마라며 투정 부리듯 웃어넘긴다.


갈수록 내가 받아 온 사랑의 감정과 순간순간들이 더 자주 생각이 나 시시때때로 울컥하고 만다.


가슴 두근거리고 설레는 것만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겠다.

마음 한편을 비워두고 사랑으로 채워가는 걸 보여주거나 때로는 감추기도 하지만 들켜버리고 마는 것도 결국에는 사랑이라고. 요란스럽게 드러내지 않아도 내가 당신의 나이와 삶들을 지나오고 나서야 뒤늦게 느끼게 되는 것도. 나는 결국 넘치는 사랑을 받아 왔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나는 넘치는 사랑을 받아왔고 그래서 나 역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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