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주 Oct 29. 2019

쓰는 사람이 되는 건.


내가 쓰는 사람이 될 수는 있는 것일까.


무엇을 해도 내가 완벽히 해내는 것은 없었다.

가장 오래 해오는 일이라고는 육아 7년. 그런데도 여전히 어렵고,

어떤 일의 전문가가 되는 길이 나에겐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고,

처음부터 나에겐 맞지 않는 일인 것처럼 모든 것이 나에겐 맞지 않는 옷 같았다.

방황하고 또 방황하고.

뭘 해도 쉽사리 나의 모든 걸 내걸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것은 너무나 많았지.


영화 시나리오 작가

방송작가

영어 선생님

번역가

통역사

캘리그라피스트

작가

칼럼니스트

.

.

.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도서부라든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면 보이는 아이들의 반응이 싫어 애써 묻어두었다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다시 책 뒤로 숨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모른 척 덮어 두기만 했던 책사랑이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내가 못 본 책은 많고, 어마어마한 글을 쓰는 이들 틈에서 내 글은 점점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냥, 나의 마음을 대신하는 글 뒤로 숨기 시작한다.

훨씬 마음이 편해진다. 


책으로 위로를 받고, 책으로 행복해하던 작은 아이가 엄마가 되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많이 웃었고 모난 사람이 되기 싫었기에 더 애를 써왔다.

그게 천성인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애씀도 있었다.


대단한 산전수전은 겪지 않았다 할지라도, 내 마음에선 수많은 생각들이 파도를 타고 휘몰아치기를 반복해왔다. 대단한 걸 이룬 30대는 아니지만 내 모든 시간과 생각들을 그냥 흘려보내기 싫어진다.


시인도 되고 싶고, 소설도 쓰고 싶었고, 에세이도 쓰고 싶어 졌다. 


즉흥극에는 실수란 게 없다. 그저 아름답고 행복한 돌발 사건만 있을 뿐이다.

- 티나 페이


그런 마음에, 갑작스레 이끌려서 참여한 고유 글방 1기가 오늘로 마지막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나의 속내를 드러내기 두려워서 내 글에선 여전히 책 속에 숨은 내가 보였지만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책 속에 숨지 않고 나를 보여주고야 말았다. 웃음 짓기도 하면서 쓴 글을 읽다가 결국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고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이럴 수가..


우리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고, 어디서든 응원을 할 것이라는 고운 학인 님의 말에, 울컥 또 눈물을 쏟게 되었다.

자신의 슬픔, 상처들을 드러내고도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학인들의 결에 나도 스며드는 느낌으로

그 순간, 시간들이 짧았다 해도 나에게 모든 감정을 쏟아붓게 한 것은 틀림없어서

오늘도 또 감정이 완전히 쏟아지고 난 후에 난 넋 놓고 한참을 먼 산을 바라보게 된다.

사는 곳도, 살아온 시간들도. 나이도. 지금의 상황들도. 모두 어느 것 하나 같은 부분이 없다 해도

이야기 면면에서 서로가 서로의 생각 속에 이미 함께 존재함을 느끼고 함께 눈물 흘리고 또 함께 웃기도 했다.


이들을 만나서 나서야 나는 정말 글을 쓰고 싶어 졌다.


지금 당장 책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계속 글이 쓰고 싶어 졌고.

(책은 나중에 연륜이 묻어나는 글로 지면에 새기고 싶다.) 

그리하여 '연재 기고가' 로서의 삶도 지내고 싶은 생각은 더 강해졌다. 


정말 글로 살아내는 작가가 될지, 어떤 결로 내 글들을 채워나갈지는 모르겠지만 

살며시 용기내어본다.


내가 쓰는 사람이 되는 걸.




2019.10.29 

고유 글방 1기 마지막의 여운이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아이를 재우고 타닥타닥.


작가의 이전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