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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Nov 03. 2019

어떤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일까.

허은실 <내일 쓰는 일기>

                                                                                                                           


삶에도 그런 지점들이 찾아온다. 인생의 활주로에서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일. 멈추거나 머뭇거리기보단, 날아오르는 것이 최선인 순간들. 때론 그게 누군가를 향해서일 때도 있을 것이다. 상처받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마음의 속도라는 게 있으니까. 그러니 비상착륙을 할지, 계속 비행을 할지는 일단 이륙을 한 다음에 판단할 것.




<내일 쓰는 일기> 290p







잔잔하게, 제주도에서 살아내야 했던 엄마, 작가, 아내로의 시간들을 담아냈다.



감정이 예민한 딸과의 이야기들이 

딸을 바라보고 자신과 자신의 딸에게 건네는 이야기들이 낯설지만은 않다.



자신의 낯선 시간들을 그대로 부딪치는 시인의 제주 적응 분투기가 그려지는데

내가 가져온, 제주에 대한 생각들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짧은 생각들이

조금씩 깨지는 듯한 것은 당연했다.

내륙과 다른 섬에서 살아왔으니 당연히 온 세월에 새겨진 그들만의 생각들과 여러 방식들.

달라진 언어만큼 그들의 생각들은 강인하기도 하고, 때론 서글프기까지 하다.



제주로 떠났지만 제주도 땅을 밟지 못한 이들을 향한 연민의 감정과

과거에서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야 했던 이들을 향한 애달픈 감정들

여전히 많은 이들의 편견에 맞서 싸우는 건,

정말 그들에겐 고달픈 일이어서 조금 더 강해져야만 하지 않았을까.



제주도에서 지내며 마주하는 풍경들과 조금 더 단단해지는 모녀의 이야기들에서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려 애쓰는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한다.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어오는지 느껴봐.

바람이 오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려 보렴.

바람을 타고, 바람에 실려야 사는 일도 수월하지만 때로는 바람을 마주하고, 바람에 맞서야 할 때도 있단다.

바람이 없을 때는 네가 달려가렴.

기다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 네가 바람을 일으킬 때 바람개비는 아름다운 원을 그리며 멋지게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일도 아마 그럴 거야.




<내일 쓰는 일기> 24p








다른 친구들과 함게 심은 바람개비를 보면서,

자신의 바람개비만 돌아가지 않는다며 속상해하는 딸을 보며 직접 바람을 불어주라고.

딸이 그 바람에 의해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보며 환하게 웃는 걸 보고 짧은 시를 건넨다.

바람을 맞설 수 있는, 제주에서 너무나 많은 바람을 맞서게 되어서 더 바람을 건네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

바람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나는 왜 네가 아니고 나일까. 무엇이 나를 나로 만드는 걸까.

다만, 그건 알 것 같아. 그렇게 넘어지고 떨어뜨리고 부딪친 상처와 흔적들이, 실패의 궤적들이 너의 정체성과 개성을 만들어 간다는 것 말이야. 넘어지고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오늘도 너는 나에게 새삼스러운 화두를 던진다. 내가 나로 사는 것.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양심의 거울에 비춰볼 때 적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 정답을 찾기는 어렵지만, 질문만은 놓지 않으려 한다. 나는 나로 살고 있는가.




<내일 쓰는 일기> 57p








아이의 모습에서, 아이을 대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동시에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동시에 다만, 나는 자꾸 다정한 언니가 나에게 나근나근하게 이야기를 전하는 것 같다.

너의 내면을 보고, 너의 딸의 내면을 바라보라고.

다그치지 않고 다만 다정하게 자신이 알아온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


이 책은 그저 나에겐 대화를 나누는 하는 선물이었으니

 많은 페이지와 사진과 판형에 의해 이 책의 가치를 매기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


그래도 나는 읽으면서 좋았으니 되었지.



막연하게 내륙의 사람에겐,

(제주에서 멀지 않다고 바다 냄새와 늘 함께인 부산에서 살아왔어도 제주도는 늘 가고 싶었던 곳)

제주도는 단 일주일이라도 지내고 오고 싶다며 늘 생각하게 하는 곳.

그래도 날이 갈수록 새겨지는 색유리에 비친 제주도의 모습은 멀게도 느껴지던 곳이었는데

조금 다른 제주도의 모습을 본 느낌이 들면서 책을 덮었다.







덧. 어쨌거나, 여전히 제주도는 가고 싶은 곳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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