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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Nov 02. 2019

내 소원은요.

한 해가 이제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태로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적어도 내가 학생이었을 땐 거리에서 겨울 노래가 하나 둘 들려오기 시작하고 크리스마스 용품이나 선물, 케이크 예약 문구들이 하나 둘 보이게 되면 겨울이 오는 것과 동시에 크리스마스가 오는구나 하며 마음은 두근거림과 동시에 다시 또 한 해를 잘 살아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게 되기도 했다. 


그 감정을 느끼기에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가버려서, 이제는 겨울이 와도 크리스마스 캐럴이 익숙하게 들려와도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크거나 다가 올 한 해가 너무 막막해서 두려움의 감정이 먼저 들어버리는 지금의 내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캐럴, 겨울을 느끼기 전에 상실감의 감정부터 느낀 것은, 대학교 졸업할 즈음 졸업도 전에 취업을 하였던 젊은 날의 내가 그랬고, 서울로 올라와 낯선 곳에서 나에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이들 틈에 있을 때 생치기 당하는 마음에 찬 바람이 더 스산하게 느껴질 때의 내가 그랬고, 아이를 키우면서 크리스마스는 오직 아이의 선물만 생각하게 되는 엄마의 내가 그랬다. 더욱이 서울 시내를 가본 기억이 거의 없으니 (사람이 많고 떠들썩한 곳을 너무 싫어해서 사실은 서울에서 자취하며 연애를 할 때도 서울 시내보다는 교외로 데이트를 다녔었지.) 15년은 더 넘게 그런 시내의 크리스마스 풍경은 TV 속 뉴스에서나마 얼핏 지나면서 보게 되는 풍경에 다름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겐 시공간이 분리된 것처럼 느껴질 만큼 낯설었다.


그렇게 그냥 한 계절, 한 시절에 지나지 않는 풍경인데 지금은 왜 이런지 모르겠다. 기분이 이상한 올해구나 하며 웃어 넘기기도 하지만... 조금 더 내 감정을 건드리는 걸 모른 척할 수가 없게 한다.




가장 시간을 앞서가는 L 몰 상가 안에는 벌써 작은 트리로 장식을 하여 두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오고 갈 수 있게 꾸며놓았으니 여길 올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딸은 오늘도 구석구석 잘도 다니더니, 트리에 작게 매달아 놓은 태그 종이들 틈에서 한참을 멈추어서 뭔가를 찾기 시작한다. 다른 이들이 적어 놓은 글씨들 틈새에서 기어코 빈 종이를 찾은 딸. 내가 항상 펜을 들고 다니는 걸 알고 있으니 '장화 신은 고양이' 표정으로 올려다본다. 꺼내 주니 입꼬리가 올라가고 뭘 적을까 고민하더니 두 손 모으면서 "눈이 오게 해 주세요"라고 적고 싶단다.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한 7살 숙녀님을 위해 얼른 적어서 보여주니 열심히 따라 적고는 이름도 적고 그림도 그린다. 만족한 딸. 엄마도 적으라며 얼른 내가 적을 종이를 찾는데 열심이다.




친절한 7살 아가씨, 우리 딸 덕분에 나도 한 장 적으니 뭐라고 적었냐고 묻는다. 말해주니 배시시 웃는 딸, 내 소원이 마음에 들었나 보네.


"눈이 오게 해 주세요. 서현"

"우리 가족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주세요. y.j"


너무나 다른 엄마와 딸의 소원. 


철 모르던 시절엔 크리스마스 카드를 고르는 것도, 누구에게 쓸지 고민하는 것도 그저 즐거움이었는데 이제는 그냥 또 한 해 동안 곁에 변함없이 있어준 누군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너무나 진중하고 엄숙한 감정마저 함께 가져가게 한다. 


친척들, 친정과 시댁과 떨어져 지내면서 나이가 들어가며 자연스럽게 몸도 마음도 약해지는 분들을 보는 것이 사실은 아직도 무섭다. 그것이 순리이고 당연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제는 그 늙어감과 죽음이라는 것에 조금 더 자주 마주하게 될 시절이 다가오는 걸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하고도 싶은 여전히 철 모르는 나도 숨어있다.


정말 간절하게, 올 한 해를 무사히 함께 보낼 수 있기를 내 온 마음 담아서 보낼 수밖에.


아이가 갓난아기였을 때 잠들면 한참 있다가 몰래 코 밑에 손을 대거나 숨소리를 들어보면서 아이가 곁에 있음에 감사하기도 했고, 내가 너무 아파서 정말 하늘이 노래지는 것을 느끼면서 엎드려서 겨우겨우 다닐 때는 내가 아프거나 쓰러지면 우리 아이를 당장 돌봐줄 이가 없는데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서글프기도 하고 더 굳게 마음을 먹기도 하였다가, 또 한 편으로는 갑작스레 죽음의 순간이 오면 못 다 전한 사랑을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까지. 내가 불면증인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꼭 밤만 되면, 내 곁에 잠든 아이를 한 번이라도 더 안고 나서야 자는데 이런 생각이 저절로 스멀스멀 나를 깨우니깐.


내가 어딘가에 자꾸 적고, 사진을 찍고 남기는 것들은. 자랑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남겨두고 싶은 마음인 걸 누구에게도 내비치지는 않았는데 겁이 많은 내가, 내 존재가 사라질 날을 생각하면 이 순간을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컸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20년이나 30년이 지나서 딸이 자라면 이것들을 보고 추억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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