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 현대문학
메리는 발길을 멈추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명랑하고 친근한 휘파람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정 가는 데 없는 꼬마 소녀도 외로움을 탈 수 있었다. 잠겨 있는 커다란 집과 황량한 황야, 벌거벗은 커다란 정원은 이 아이에게 세상에 자기 말고 아무도 없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만약 이 아이가 정이 많고 사랑받는 데 익숙했더라면 마음 아파했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심술궂은 메리 양'이라도 쓸쓸한 기분은 들었고 가슴 깃털이 빨간 작은 새 덕분에 뚱한 작은 얼굴에도 미소에 가까운 표정이 떠올랐다.
<비밀의 화원> 50p
인도에서 자랐지만 엄마와 아빠의 정은 느끼지 못하고 자라온 소녀가,
크레이븐 삼촌의 책임감으로 인해 낯선 공간에 와서 지내기 시작한다.
외로움이나 슬픔의 감정보다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라 여겼을 심술궂은 행동들로 지내다가
바깥공기를 온 모으로 받아들이고, 정원을 둘러보고
빨간 울새를 만나면서, 아이다운 천진난만함을 때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자신을 돌보던 하녀 마사의 이야기들로 호기심으로 시작된 것들은
생각지도 못할 만큼 그 큰 공간과 공간을 채우던 공기, 분위기들을 바꿔버리게 된다.
어릴 때 이 책을 읽었을 때 머릿속으로 그려오던,
콜린을 휠체어에 앉힌 채로 메리와 디컨이 밖으로 나가 그들만의 세계에서 지내던 모습.
콜린과 메리의 첫 만남에서 콜린의 겨우 반쯤 일으킨 모습과 표정,
메리의 손을 잡고 자장가와 이야기를 청하던 여린 콜린의 모습을 기억해냈다.
물론, 메리가 처음 비밀의 정원 문을 열고 들어가던 모습도 기억해냈지만
콜린을 만나고부터의 모습은 더 생생해져 갔다.
정원이, 나의 로망이었지.
외국을 가고 싶어 했던 것도,
모네의 정원 그림들과 풀과 꽃이 가득한 모습의 그림들을 볼 때도
마음이 싱그러워지는 걸 느끼곤 했었지.
라면서..
10년 뒤에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 프랑스로 함께 여행을 가야지 생각하는 나에겐
또 모네의 정원도 우리가 함께 보고 싶어 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건 당연할지도.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정원에는 가을의 황금빛과 자줏빛, 보랏빛이 도는 푸른색과 불타오르는 선홍색이 가득 펼쳐져 있었고 사방에는 때늦게 핀 백합 송이가 함께 무리 져 있었다. 순백색, 혹은 백색과 루비색이 섞인 백합이었다. 크레이븐은 이젠 죽어 버렸지만 찬란한 영광이 빛났던 그 해의 이 계절에 이 꽃들을 처음 심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철 늦은 장미 덩굴이 위로 기어올라 늘어지거나 얽혀 있고, 햇살에 노랗게 변해가는 나무의 색이 한층 더 짙어져 마치 빽빽한 황금 사원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비밀의 화원> 366p
읽으면서, 내내 나는 엎드려서 팔꿈치를 든든한 지지대 삼아 몸을 반쯤 일으켜서
발은 동동거리면서, 마치 어린애가 그림책을 바닥에 엎드려 보듯이 그렇게 책을 펼쳤다.
그 순간이 나에겐 비밀의 화원, 그 미지의 세계를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었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안에서 아이들의 모습들은, 들여다보는 나도 두근거리게 하기 충분했다.
어쩌면 정말 좋은 일이 일어날 때까지 일어난다고 말하는 게 시작일지 몰라. 나도 한 번 시험해 볼 거야.
주문을 자꾸 외우면서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때까지 생각하면 마법이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 와서 도와 달라고 계속 부르면 마법이 우리의 일부분이 되고 영원히 남아서 힘을 부릴 거야.
<비밀의 정원> 293p & 296p
아이들에게 마음속으로 원하는 걸 간절히 기도하라고 한다던가,
어떤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줘야 하는 순간도 꼭 오겠지만.
이 글로도 충분히 나의 그런 수많은 말들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동화 속으로 일단 들어가서 함께 한다는 순간을 느꼈다면
언젠가 또 기억이 나겠지.
그리고 좋아하는 책은, 꼭 원서를 구하여서 가지기 시작한 나는
물론, 이 비밀의 화원 역시 Secret garden이라는 이름이 멋지게 새겨진 빈티지 원서도 갖고 있어서.
다 읽고 나서 모아보니 혼자 보물을 가진 듯이 으쓱해진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나를 행복하게 한 동화.
또 보고 싶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