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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Nov 06. 2019

그도 자신의 많은 부분을 내주었다.

남편에게.

이제 막 쌀쌀해지려는, 즈음이었다.


전화로 이별을 이야기하고, 비가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잠들었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담담히 이별한 연인이 되었던 내가

아무렇지 않게, 그 비어버린 틈을 허락하기 싫어서 사진 동호회에 가입을 하였고

작은 필름 카메라를 들고 생전 처음 만나는 이들과 어색하면서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부산에 살던 내가 부산도 아닌 지역을 간 것은 정말 준비된 마음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는데

그 첫날에 간 곳이 울산대공원.

25년 인생 처음 가 본 곳. 


거기서 또 한 명의 회원이 합류하고 나서야,

여기저기 함께 때로는 따로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햇살이 좋았으니 그것으로도 나의 기분은 이별한 여인의 비참함이나 쓸쓸함을 잊게 하였다.


모두들 나를 귀여운 동생처럼 여기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잘 챙겨주기도 하여서 어찌나 좋았던지.

처음 만난 이들과 오전에 만나, 저녁 늦은 시간 놀이공원에서 야경까지 찍고 저녁까지 먹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가 지나고 회사로 다시 출근하고,

메시지 창이 울린다.


"잘 들어갔어?"


내내 인상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알게 모르게 내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던 회원.

어디에 있어도 옆에 있더니 갑자기 대화를 걸어온다.


"국화차 좋아하는 것 같던데, 국화차 파는 곳 알아서.. 오늘 사줄까?"


저녁 늦은 시간, 마트에서 만나 국화차를 정말 사주고 집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돌아간다.

양산까지. 1시간 30분.


하루 이틀, 계속 연락하면서.

하루 이틀, 계속 찾아와서 집에 데려다주고 또 집으로 돌아간다.


차도 없으면서, 먼 길을 자처하고 데이트도 아닌 데이트 같은 느낌으로 

추워지는 겨울을 함께 지내게 된다. (참, 이 사람 손이 참 따뜻하다. 연애하기 전에도 너무 추울 땐 손을 빌려주던 그였다.)


그 사람에 대한 다정함에 이끌리는 것인지, 외로운 감정인지 몰라서, 그저 오빠 동생으로만 지내자고 했었다.

그래도 변함없는 모습에, (실은, 이 이야기는 결혼 후 7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내내 이야기하는 스토리)

사귀어 보자고 이야기했다.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않아서서울로 일을 하러 올라가게 되고 나서도,

주말이면 꼭 내려왔고 주말에도 출근하던 우리 회사까지 찾아와서 온종일 나와 함께 지내고 

일요일 늦은 시간에 다시 올라가기를 여러 번 반복했었다.


결국 나도 서울로 올라왔고, 부산 촌 아가씨가 외로움을 견디면서 지금까지 지내오게 된 것은

내가 무서울까 봐 저녁마다 찾아와서 함께 밥을 먹거나

형광등 불이 조금이라도 깜박거리면 얼른 형광등을 갈아주러 서울 반대쪽에서 오기를 마다하지 않고

내가 너무 힘들다니, 근교로 여행을 떠나 아무 생각 없이 지낼 수 있게 해 주었던 사람이 곁에 있어서.


결혼하기까지 그 수많은 시간들을 어찌 다 나열할까.

나열하지 않아도 불꽃처럼 강력한 연애는 아니었지만 편안함이 가장 큰 우리 연애의 본질이었다. 

결혼할 때도 단 한번도 다투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와주던 사람이었고.

결혼 후에도 툴툴거리면서도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어디든 데려다주거나

갖고 싶어 하거나, 하고 싶어 하는 일은 한 번도 반대의 의견을 내 본 적이 없는 사람.

아이를 낳고 아이와의 시간과 내 모든 관심을 아이에게 둘 때조차도 한 번도 날 탓하지 않았었네.



매일 다정하게 애정 표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기운 없어하면 두 팔을 벌린다.

그 순간은 자신만이 나를 안아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처럼.


이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나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나의 삶의 한 부분이 사라질 것 같은 감정에

너무나 많이 아플 것 같다.


오랜 시간동안 나는 잘 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그도 자신의 많은 부분을 내주었다. 


지금도 여전히 딸이 나에게 안겨오거나, 걸어가다가도 안아달라고 하면

엄마 힘들다며 자기가 아이를 안거나 목마를 태우고 든든하게 걸어간다.

무거운 짐은 나에게 들려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또 사소한 일들로 티격태격하거나 볼멘소리를 내는 아내가 되겠지만,

그래도 결국엔 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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