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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Nov 06. 2019

멀고도 가까운 /  결국 그렇게 슬픔을 먹고.이야기도.

리베카 솔닛

                  

세 번째 만나는 책이지만,

소용돌이치는 언어들 사이에 갇힌 느낌은 여전했다. 




이번에는, 한 장 한 장씩 조금씩 거리를 두고 읽어나갔다.

한숨에, 계속 읽어내려가는 것보다 간격을 두고 읽으니

왜 여기서 리베카 솔닛은 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생각해보았다가

그래도 이 이야기는 너무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면서 만나게 되었다.




살구 더미에서 시작한 그녀의 이야기는,

어머니에 대한 외로움과 고통, 슬픔들을 호소하는 딸이었다가

마지막 살구 더미에서 비로소 그녀는 어머니와 화해한다.

진정한 화해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화해했다고 믿고 싶다.




엄마와 딸의 관계만큼 이상하리만큼 슬프기도 하고,

애달프게 애정을 듬뿍 두어도 모자라기도 한 관계가 있을까 싶다.




싸우다가도 화해하고 사랑한다고 껴안고 마는 우리 모녀에게도 피해 갈 수 없는 관계 일지도.



이제는 어떤 관계가 있다고 확실히 말하기가 사실은 두렵다.

너무나 다양한 관계들이 존재하니깐.

다만 한 사람과 한 사람의 관계들이 존재하는 것만은 확실하겠지.








누군가는 가만히 있고 다시 누군가는 무언가를 한다. 나방은 깨어 있고, 자기 일을 하고, 눈물을 훔치고, 밤을 가로지르며 날아간다.




<멀고도 가까운> 31p








다시 책으로 돌아와 리베카 솔닛이 그녀의 어머니에게 화해를 청하는 것은,

살구 더미에서 시작한 그녀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과거에서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만난 이들과의 이야기를 되새기고

결국 그녀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하는 것.

어머니가 사라져가는 것을 바라보고 어머니에 대한 연민을 품으면서 화해를 청한다.










우리는 슬픔을 먹고 살고, 이야기를 먹고산다. 그 이야기가 열어 주는 널찍한 공간에서 우리는 한계를 넘어 상상력을 여행한다. 이야기가 우리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우리의 불완전하고 조각난, 미완의 자아의 가능성을 넓혀 보라고 재촉한다. 남동생이 종이 박스 세 개에 담아온 살구 더미, 그것도 눈물이었을까, 이 책도 눈물일까. 누가 당신의 눈물을 마시는 걸까. 누가 당신의 날개를 가지고, 누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걸까.




<멀고도 가까운> 371p








이 책은 단편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다. 

갑작스레 아이슬란드로 날아가겠다고 하지만

이야기는 또 다른 그 사이의 공간을 채우면서 다시 안갯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아이슬란드로 날아가서 함께 그 아름다운 얼음을 바라보게 한다.

불가능해 보이리라고 혹은 전혀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자아의 이야기.




이야기는 탁구공처럼 핑퐁, 어디로 튈지 모른다.

당황하기도 하고, 예상했던 것을 벗어나게 해서 길을 잃어버린 느낌을 주고 만다.

다시 살구 더미 앞으로 와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는 것은

또 다른 회귀 본능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뚱맞은 것처럼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결국엔 그 이야기들이 계속 그녀의 머릿속을 채웠으리라.

그러니, 어쩔 수 없었을거다. 리베카 솔닛 본인도.








마침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를 들고 온 것이 떠올라 세 편을 어머니에게 읽어 주었다. 그중 한 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지금 우리가 애타게 찾는 것은 한때 더 가깝고 더 진실한, 우리와 더 밀접한/


한없이 다정한 것이었건만. 이제 모든 것이 멀리 있어/


한숨뿐이었음을....."


이것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가는 좋은 방법이었고, 나 역시 시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익숙한 시구를 소리 내어 읽으니 더 애달프고, 더 가혹하고,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방이 새의 눈물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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