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가 글이 되는 날은 언제일까.
노트가 무수히 많은 만큼, 그 노트들을 다 쓰지도 못한 채 쌓아두는 것은 몇 해가 지나도록 고쳐지지 않는다.
어떤 노트는 쓰려고 꺼냈다가 앞의 휘갈겨 적은 글씨가 부끄러워서
혹은 그 내용이 너무나 유치찬란하게 느껴진다거나 잊고 싶은 과거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있다면
과감히 종이의 한 장을 찢어버린다.
미처 찢어지지 못하고 남은 종이들은 톱니가 되어서 나를 책망한다.
또 다른 부끄러움과 수치의 기억으로 얼굴을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하고 그 노트는 다시 나에게서 먼 장소로 유배당하고 만다.
얼마나 가혹한 행위였는지, 뒤늦게 다시 찾은 노트들의 앞 부분을 자잘한 톱니 같은 종이의 흔적에 연민을 담아 쓰다듬어준다.
미안해. 미안해.
심지어 지금은 왜 사라진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애써 떠올려보려 하는 모습이라니.
수많은 노트들과 수많은 톱니 조각들을 바라보면서 애써 웃어보게 되네.
노트를 고를 때마다, 종이의 사이즈, 질감, 두께, 비침 정도에 왜 그리도 집착을 했었는지.
그런데 내가 그냥 끄적거려둔 것을 - 심지어 몇 장 되지도 않는 종이를 - 넘겨보면서 내가 메모를 하고 그 순간의 나의 모든 집착들을 내려두고 다시 또 내 생각을 모으거나 찾아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네.
메모는, 적어도 작가들의 메모는 나에겐 늘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내가 하는 메모는 그들의 메모에 비하면 너무나 작게 느껴지고 얼른 지워버리고 싶을 뿐이었지 '저장'해두고 싶지 않았었다. 그런데 내가 메모를 보면서 웃게 되다니.
심지어는 그 찢어진 종이 조각들 -톱니 같은 종이 조각들- 마저 고맙게 느껴질 정도로 생각하게 되어버리니 말이다. 그 노트는 그냥 말끔한 '일반적이고 평범한' 노트가 아니라 나의 부끄러운 기억마저 고스란히 품고 있는 것이니깐.
무심코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좋은 것이기 위해서.
혼자 있는 시간에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그런 방식으로 살면서 세상에 찌들지 않고,
심하게 훼손되지 않고, 내 삶을 살기 위해서.
정혜윤 <아무튼, 메모>
나의 작은 메모 공간이 되어줄 노트들이 이 글을 읽고 나서야 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메모가 또 다른 목적이 아니라, '좋은' 것이 되는 행동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좋은' 생각을 하길 원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내 삶을' 살기 위해서라니. 이 이상 더 다른 수식어는 메모를 메모이기보단 아예 다른 잡문으로 만들어버리게 될 것 같다.
지금 나에겐 그녀가 말하는 '홀로' 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 필연적인 일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생각하거나 책을 읽거나 끄적거릴 수 있는 시간- 그래도 일단 내 곁에 늘, 연필과 작은 노트를 둔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적어보거나 단어들을 적거나, 읽고 싶은 책을 적으면서 그 메모들이 의미를 가지는 순간을 찾을지는 불투명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이라는 말을 속으로 툭 내뱉어보면서.
속기나 문구는 모두 기록한 순간과 장소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다. 이건 매우 엄밀한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기록은 그게 무엇이든 내가 그걸 쓴 이유가 아닌 느낌의 체험으로 나를 데려간다. 이건 중요하다. 그러면 나는 그 아이디어, 곧 그 사건의 의미에 대해 돌이켜 생각하기보다는 아이디어가 나오기 이전부터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내가 공책에서 포착하고자 하는 건 논평이나 생각이 아니라 그 순간이다. 그리고 완성된 시 자체에서 포착하고자 하는 것도 물론 이와 같은 경우가 아주 많다.
메리 올리버 <긴 호흡>
기록은 그게 무엇이든 내가 그걸 쓴 이유가 아닌 느낌의 체험으로 나를 데려간다.
그래, 일단 쓰자. 언제든 다시 또 나를 되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