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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May 01. 2020

말로 실재를 만드는 것.

버지니아 울프 / 지난날의 스케치


위대함이란 지금도 내게는 실재하는 자질로 보인다. 우렁차게 울리고, 괴팍하고, 두드러진 그 어떤 것으로 내 부모는 충실하게 나를 이끌어 갔다. 그것은 육신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말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이후로 나는 위대함을 느껴본 기억이 없다.
버지니아 울프 <지난날의 스케치>



작은 판형의 이 책안에 담긴 그녀의 글은 순간 순간 놀랄정도로 그녀 안의 마음이, 내재된 많은 것들이 나오는 것을 느낀다.


그녀의 어린 시절, 그녀가 누워있었을 방의 모습과 분위기를 그려낸 글을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은 '이렇게 세심하게 그려낼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라는.


그녀에게 지극히 많은 영향을 끼쳤을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과 결혼.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영원한 그리움.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동시에 갖는 분노의 감정. 형제들과의 이야기. 사교계 만남에 대한 이야기.


극히 일상적이라고 여겨지는 많은 부분의 모습에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새겨넣고 그 이야기들을 기꺼이 꺼낼 수 있는 용기가 버지니아 울프에겐 있었던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 또 콘월에서의 이야기는 어쩜 짧았을지 모르지만 완전한 행복의 출발점이라고 할 정도의 애정이 가득 느껴졌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는 버지니아 울프를 애정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든지 알 것이지만,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책이 아닐까.



나는 그것을 말로 옮김으로써 실재로 만든다. 그저 말로 옮김으로써 완전하게 만든다. 이 완전함은 그것이 내게 상처를 줄 힘을 상실했음을 뜻한다. 말로 옮김으로써 고통을 없앴으므로 나는 단절된 부분들을 결합하면서 큰 기쁨을 얻는다. 이것이 내게 가장 큰 기쁨일 터다. 그것은 글을 쓰면서 내가 무언가의 속성을 발견하고 어떤 장면을 제대로 살려내고 어떤 인물을 결합할 때 느끼는 환희다. 여기서 이른바 나의 철학이랄까. 어떻든 한결같은 생각에 이른다. 즉 목화솜 뒤에 어떤 패턴이 숨어 있고, 우리 즉 모든 인간은 그 패턴에 연결되어 있으며, 온 세계는 한 편의 예술 작품이고, 우리는 그 예술 작품의 일부라는 생각이다. (...) 산책하거나 쇼핑을 하거나 혹은 전쟁이 나면 유용한 일을 배우는 대신 지금 글을 쓰면서 오전 시간을 보냄으로써 나는 이것을 입증한다. 글을 씀으로써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훨씬 더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버지니아 울프 <지난날의 스케치>






 사교모임에서 드레스를 입고 어울리는 것보다 아버지 서재로 올라가 아버지의 책 읽는 모습을 바라보고, 아버지의 흐뭇한 미소와 함께 건네지는 인사를 듣는 순간의 행복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감각의 베일이 벗겨지고 예리해지게 되었다는 건. 그녀에게 지극히 괴롭고 슬프고 무서웠을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감정이 얼마나 아려왔었을지, 동시에 느껴졌을 글쓰는 것에 대한 자신의 모든 감각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어떤 느낌이었을지.



어머니의 죽음이 내 감각의 베일을 벗기고 갑자기 촉발해서 강렬하게 만들었다. 마치 그늘 속에서 잠자던 것에 불타는 유리가 씌워진 듯이. 물론 이처럼 감각이 예리해지는 일은 돌발적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놀라운 경험이었다. 조금도 애쓰지 않았는데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 그 시의 의미가 완전히 이해되는 것 같았다. 투명해진 단어들은 더 이상 단어가 아니었고, 너무 강렬해진 나머지 그 단어들을 체험하는 것 같았다. 그 단어들이 내가 이미 느끼고 있는 감정을 밝혀주는 것 같아서 어떤 단어가 나올지 예상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 펜은 향기를 띤다.
버지니아 울프 <지난날의 스케치>





그리고 나는 그녀의 글들을 조금씩 만날 준비가 되어가고 있나보다. 그녀의 글에 빠져서 나오기 싫었으니까.


나보다 100년 전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서 자신의 몸 속, 기억 속에 모두 담아왔던 생각들을 세심한 문체로 그려왔던 그녀였다. 드문 드문 보이는 전쟁을 겪어 내는 모습들도 레너드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그녀의 글 속에 무심하게 적어놓은 듯한데 오히려 그래서 더 강하게 뇌리에 박히는 것 같아. 무엇보다도 이 글이 로저의 전기를 쓰면서 틈을 내서 적은 글이라는 것, 날짜를 세심하게 기록하여 둔 것이, 사실 어떤 글들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첫 한 줄을 시작하는 것도 아직은 손가락이 여러 번 헤매곤하는 나에게는 또 다른 용기를 주기도 했다. 사로잡는 문장을 적어야한다는 것에서 벗어난 해방감으로 조금은 힘을 빼라고.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작년에 한 번 읽어보려 얇은 책을 들고 펼쳤다가 감당하지 못할 거라는 예감에 내려 두었는데. 이번에도 사실은 그냥 한 두페이지 천천히 읽을까 싶었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거짓말일테고. 한 두페이지 읽다 보니, 그 뒤가 궁금해졌고 계속 나도 모르게 넘어가게 되었으니 말끔히 다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나의 그동안 가져온 독서력의 한계를 처절하게 느꼈다.


사실은, 더 세심한 서평을 적고 싶었는데. 한번 더 읽어 봐야 하려나.

하긴, 또 읽고 싶어서 다시 읽게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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