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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May 02. 2020

지금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

라문숙 /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누군가 한때 영혼을 잃었다면 그가 영혼을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은 바로 그 영혼에게 그들이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을 온전히 되돌려주는 것이 되어야 할 테니까. 그러니 그대는 어느 날 거리를 지나다가 문득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소스라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 일이다. 영혼이 오고 있는 동안에, 그러니까 영혼을 잃어버린 그때가 영혼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이므로.




라문숙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이 문장에서, 덤덤하게 이어지는 글의 사이사이에서 내 감정과 이성이 무장해제되어버리고 말았다.


눈물이 날까 봐 조심하였지만 목이 막혀버린 느낌에 당황한 것도 잠시 정신을 차리고 다시 글을 읽었다.



지금도 여전히 내가 무얼 잘하는지 모르겠고, 나는 왜 지금까지 이렇게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 없이 지내왔었는지 나의 생각들이 사사롭게 느껴지는 순간은 또 얼마나 많은지. 내가 내 마음을 잘 읽어주고 있는지는 모르겠고, 그저 욕심에 도리어 괴롭히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럽기만 한 시간들이 속절없이 흘러간다.



매일 글을 쓰고 있지만, 왜 나는 여기에 쓰고 있는 것일까. 아직 많은 이들이 읽어주고 공감할 만큼 글을 쓰지 못하는데 너무나 무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그런데 사실 모든 내 행동은 이런 무용함이 그저 쓸모없음이 아니란 것을 믿고 시작되었던 것인데 꼭 이렇게 마음은 여러 번 갈팡질팡하게 된다.



하루에도 수십 번 내 마음이 들쑥 날쑥 해지는데 이런 나여도 괜찮다고 다독임을 받는 느낌이었으니, 순간적으로 코끝이 시큰해졌다. 내가 서둘러 오는 사이에 아직 오지 못한 또 다른 나는 내가 기다려주길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금은 그 '나'를 위해 나의 마음들, 시간들을 모아두자고. 그래도 괜찮다고. 지금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이니깐.







아름다운 것들 앞에서 나는 멈춘다. 아름다움은 한결같이 슬픔과 등을 맞대고 있어서 종종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뒤돌아보게 하고, 울게 한다. 지나고 보면 그런 순간에 내가 한 일이 나도 모르게 놓쳤던 영혼을 기다린 것이 아닌가 싶다.




라문숙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나도 지금, 그 영혼을 잠시 기다리는 중인 걸까.



머무르고 머무르는 시간이 갑자기 허무하게 느껴질 때는 안달 나기 마련이다. 


계속 헤매고, 책장 앞을 두리번거리고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싶은 순간이 이렇게 또 와도 되는 건가 하는 처절하게 느껴지는 불안함과 외로움들.



또, 이 글을 올리고 나면 누가 읽든 읽지 않든, 호응이 없어도 내 마음은 일단 괜찮아지겠지. 

다시 기꺼이 불안함을 껴안을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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