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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Jul 02. 2020

빈 시간, 빈 페이지를 향해

조안나 <그림이 있어 괜찮은 하루>

"일상이 권태롭다고 어디로든 훌쩍 떠날 수 없는 나에게 그림 감상과 독서는 타인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혼자 있어도 된다고 허락받는 행위였다. 억지로 침묵을 만들지 않으면 남의 말, 소음, 가십에 나의 온 시간을 빼앗길 것만 같았다. 평온한 일상과 비릿한 일과가 교차하는 우리의 고된 하루에 '생활과 시간이 다져진' 그림 하나를 볼 시간을 선사해보자.

"때론 빈 페이지가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지요."

 - 영화 <패터슨>중에서

- 조안나 <그림이 있어 괜찮은 하루> 46p


매일 딸과 24시간 사투를 벌이는 듯한 것이 새롭게 찾아온 2020년의 변화. 코로나 19라는 단어를 적고 싶지 않지만 그로 인한 영향을 받지 않을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니. 순하고 크게 말썽을 부리지 않는 딸이지만 예민함이 생각지 못하게 나의 감정을 찌르는 순간이 많은 것은 어쩔수가 없다. 수없이 티격태격하고 다시 애정을 표현하고 사랑을 속삭이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번 주는 또 왜그리 감정의 소모가 크게 느껴진 것인지. 여름에 유독 약한 내가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리는 없을테지. 오늘 겨우 찾은 내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사실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내 시간이 있었다면 좋겠다고 속으로 여러 번 외치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간절하고 극한에 가까운 소중하다는 감정은 오랫동안 내 시간이 없게 되었던 시간에 대한 갈증의 감정 덕분이겠지. 

권태롭다는 것에 대해서도.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지만 어느 것 하나 같은 감정으로 이어지지 않고 같은 분위기로 지나칠 수도 없는 시간들이었는데, 그 권태가 나에게 있었던가. 

그래도 여전히, 나는 권태든, 소중한 일상이든 일단은 조용히 침묵한 상태를 염원하고 있는 것. 

철저하게 빈 시간을, 빈 페이지를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고 있다는 것.

이 두 가지는 확실한 나의 어쩌면 이기적일지도 모를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

이기적이라 해도,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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