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 / 깊이에의 강요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정확히 무엇이라고 쓰여 있었는지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의미는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 있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다. 어쨌든 이런 내용이었다. <너는 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깊이에의 강요>
내가 잠시 쉬어가겠노라고 집어 든 것은 얇게 초록색 양장본으로 옷을 갈아입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집이었다.
수많은 '해야할 일들'을 옆에 두고서도, 이 책을 읽는 순간만은 완전히 몰입했다.
어느 단편 하나도 재미없거나 가볍지 않았고 짧았지만 쉽게 흩어져버릴 글들이 아니었다.
오늘 이 책을 펼친 장소는 비오는 모습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큰 창이 있는 카페였다.
꽤 오랫동안 이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의자나 테이블이 바뀌어도, 소품들이 조금씩 바뀌어도 똑같이 생각나는 인연들, 시간들이 있다.
처음 아이와 카페 나들이를 했던 곳이기도 했고, 독서모임을 단 둘이서 하게 될 때 이곳까지 와주었던 이와 함께한 곳이기도 했다.
아이의 유치원 입학을 축하하며 소소하게 시간을 보내며 많이 웃었던 곳도 이곳이었다.
늘 힘이 되어주던 이와 그녀의 딸이 함께 사진으로 남겨둔 추억이 있는 곳도 이곳이었다.
창 밖으로 보이던 의자와 테이블에 어린 딸들이 마주 앉아 색연필을 가운데 두고 그림을 그리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비오는 소리와 작게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이른 시간에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함께 들려오고 있었다.
많은 순간들이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추억속에 머무는 많은 이야기들이 그립다고 생각했다.
비가 오는 풍경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조금 더 크게 느끼게 하였다. '조금 속상해. 그립네.'
그래도 괜찮았다.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내 목을 축여주었고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은 가볍게 읽을 수 없어서 좋았다.
다 읽고 나서 다시 앞으로 돌아가 지나쳤던 문장을 다시 읽어도 좋았다. 그의 문체에 반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마 다시 한번 더 읽고나서야 책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
그래도 좋다. 그의 책은 다시 읽어도 분명 좋을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