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이렇게 별 것도 아닌 걸로 싸우는 건 아니겠지
11월 23일 수요일, 결혼 D-17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가야 하는 날이었다. 8시까지 도착해서 일을 좀 해두고, 이른 퇴근을 해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무려 50여 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에는 온 신경이 곤두선다. 워낙 신경이 무뎌서 일찍 일어나는 것 자체가 많이 힘들고, 아침잠도 엄청나게 많은 편이어서 엄청난 각오를 해야 겨우 원하는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
11월 말의 아침 6시 반은 어슴푸레한 빛이 겨우 가신 정도의 빛깔이었다. 일어나서 곤히 자고 있는 호떡을 깨우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천천히 침대 바깥으로 나왔다. 다행히 깨지 않은 것 같군, 안도하며 화장실로 가서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기 전에 렌즈를 찾았는데 렌즈가 없었다!
머리를 열심히 굴려보았다. 아무래도 새로 산 렌즈를 호떡의 차에 두고 내린 것 같다. 아, 호떡이 보고 갖다 달라고 하면 좋은데 지금 자고 있는 걸 깨우긴 좀 그런데. 어쩐담. 자동차 키가 올려져 있는 곳은 어디지. 테이블을 두리번거리다 겨우 손에 걸리는 자동차 키를 손에 쥐고, 입주하던 날부터 삐걱이며 잘 열리지 않던 현관문을 최대한 소리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열었다.
어둑하고 습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 팔을 휘적이며 센서 등을 켰다. 자동차 키에서 열림 버튼을 눌러 앞문을 열고, 렌즈 박스를 찾는다. 안 보인다. 앞좌석에 없으면 뒷좌석에 있으려나? 뒷좌석을 봤는데 여전히 없다. 그럼 트렁크에 있을까? 트렁크를 열었는데 트렁크 안에는 지저분한 짐들만 너저분하게 얽혀 있을 뿐, 내가 사 온 렌즈 같은 건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찬 날씨였는데 식은땀이 등을 뒤덮는다. 급하게 조용히 내려오느라고 핸드폰도 가지고 내려오지 않았다. 아씨, 어떡하지. 올라가서 호떡을 깨워야만 하는 건가. 십여 분을 꼬박 허비하고 차에서 볼 수 있는 곳은 다 봤다고 생각하고 다시 계단을 오른다.
아직 잠들어 있는 호떡의 얼굴을 바라보며 팔을 흔들어 깨운다.
“내 렌즈 어딨어?”
이미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깨웠던 게 기분이 나빴나 보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냐며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쓴다. 아니, 지금 너 때문에 늦고 있는 건 나야! 속이 부글거리는데 인상을 쓰며 짜증을 내는 호떡의 얼굴이 너무너무 밉다. 방안에 광량이 점점 많아져서 짜증 내는 얼굴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이미 하고 싶었던 8시 출근은 먼 일이 돼버렸는데도 어쨌든 렌즈는 끼고 가야 하는 운명인, 라식을 하지 않은 내가 잘못이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난다. 너 때문에 내 소중한 아침 시간이 몇십 분이나 날아가고 있는데 왜 짜증을 니가 내? 갑자기 억울함이 와다다 밀려오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는 게 아직 크려면 멀었다, 싶다가도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너무 억울한 일이 맞다.
울면서 다시 물었더니 콘솔박스에 있단다. 아니 그걸 왜 콘솔박스에 넣어? 기가 차는데 1분이라도 더 허비하면 안 되니까 허겁지겁 울면서 뛰쳐나오는데 잠이 덕지덕지 묻은 호떡이 맨발로 바깥으로 따라 나온다. 뒤늦게 이어 붙이는 미안하다는 소리는 미안하다는 소리로 들리지도 않는다.
다시 곰팡이 냄새가 피어오르는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우는 얼굴로 차 문을 다시 열고 콘솔박스를 연다. 선글라스 말고는 뭐 든 게 없다. 혹시나 해서 글러브박스를 열어보니 거기에 들어있다. 직사각형 반투명 비닐봉지에 담긴 내 렌즈. 속은 여전히 끓고 있고, 어이가 없어서 한숨도 나오지 않는다. 자동차 등록증이나 넣어두는 데에 렌즈를 넣어놨을 줄 내가 어떻게 짐작하란 말이야. 이건 정말 뭔가 잘못된 보관이 분명하다.
결국 그날은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가까이 일찍 깨고도 8시 37분, 평소와 크게 다름없는 시간에 출근했다. 출근하자마자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는지 호떡에게서 사과의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왔지만 대답할 기력도 나질 않았다. 한참을 단답으로 필요한 말에만 대답하고 있노라니 도저히 더 안 되겠는지 김정은 짤 같은 걸 들이밀며 웃기려고 든다. 아니 이게 진짜?
아침에 빨리 준비하려다 망한 건 나이고 당황한 것도 시간 허비한 것도 나인데, 애초에 렌즈 사둔 것을 집으로 가지고 올라왔더라면 없었을 일이고 가져올 시간이 없었더라도 남들이 보통 짐을 두는 조수석이나 조수석 아래 공간이나 뒷좌석 부근이었더라면 내가 이렇게 허송세월 할 일이 없었다는 점을 하나하나 짚었다. 게다가 당황한 내가 짜증 조금 냈기로서니 그걸 가지고 미간 찌푸리면서 이게 그렇게 짜증 낼 일이냐고 맞받아칠 필요는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리고 네가 말한 콘솔박스는 사실 글러브박스였다는 것도.
약간 일방적이긴 했지만 싸운 지 8시간 만에 싸움은 종결됐다. 호떡은 사과를 받아주어 고맙다면서도 남편은 원래 첫째 아들 키우는 거라고 했다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했다.
넌 남편이야, 아들이 아니고. 그리고 난 낳더라도 무조건 딸 낳을 거거든!
p.s. 이것이 결혼 전 마지막 싸움 에피소드였습니다.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