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도대체 언제 되는 걸까

나의 어른들

by 임우유
나이 서른셋이 되며 먹는 감정의 서른세 끼
#책임감



나의

어른들


 막연히 실체화해둔 나이의 문턱들이 있다. 열여덟은 어쩐지 모든 학창 시절을 집약해둔 것 같은 나이이다. 스무 살이 되면, 성인으로서의 모든 설레는 일들이 한 해에 몰아서 벌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법적으로 어른이 되는 나이이기도 하지만 설익은 어른으로서의 미숙함이 그만큼 또렷해 보이기도 하고. 서른엔 어린 티 내는 건 어딘지 겸연쩍은 죄악이 되는 것 같고, 지금 내 나이 서른셋은- 왠지 ‘젊은이’ 축에 낀다고 나서지는 못할 것만 같다. 그렇다고 서른셋이 되면 이제 다 어른이 되어 있는 건가 하면 그 대목에선 어딘지 모르게 위축되고 만다. 내 정신머리론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고, 아직 들 철도 많이 남았다. 냉정하게 서른 셋에겐 스무 살처럼 어른 된 지 얼마 안 돼서 그렇다고 변명할 핑곗거리도 없지만 아무리 속으로 더 재고 따져 봐도 내가 어른이라고 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럼 어른은 도대체 언제 되는 걸까?


 나이가 어릴 때, 내가 초등학교 코흘리개였을 땐 막연하게 스물이면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고, 대학교에 들어가고부턴 서른이라야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서른셋이 된 지금은, 젊다고 표현하기엔 스스로 머쓱함을 너무 분명히 느낄 뿐 노화하고 있는 몸에 비해 한참 더디게 자라는 정신과 영혼에 그저 놀라기가 일쑤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것은, 어른이 되는 경계선을 자꾸만 미래에 있는 나에게 유예하는, 영영 닿지 못할 피니시라인 같은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마흔이 되어도, 오십이 되어도 나는 지천명은커녕 그때도 내 앞가림조차 아마 온전히 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어른의 경계란 단지 모호함에 그칠 뿐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내가 서른셋이라는 나이에 너무 과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서른셋, 뭐 그까짓 것 그저 3이 연달아 나오는 숫자에 불과하고, 그냥 한숨 몇천 번 쉬면 서른넷 되는 것이고 그렇긴 한데- 그냥 좀 찝찝한 거다. 누구에게나 어른이라고 불리는 나이니까. 사촌이 아니라 조카가 생기고, 그렇게 이모나 고모가 되고, 또는 엄마가 되기도 하는 그런 나이니까. 아이가 아기를 갖고 낳을 수는 없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른 되려면 먼 것 같은데 온 사람이 나에게 어른이 되기를, 아니 어른이기를, 아니 어른이라는 것이 너무 당연해 어른이 아닌지 맞는지 논쟁조차 하지 않는다.

 나이 먹기 딱 다급해지는 계절, 가을의 바람을 정통으로 맞고 있어서일까. 어른 되고 싶지도, 될 생각도 없는데 요즘은 자꾸 생각하게 된다. 내년이면 서른넷, 이제 정말 빼도 박도 못 하게 삼십 대 초반이라고도 못 하는 나이가 될 것이다. 내년엔 그래서 조금 더 어른스러워져야 한다 싶고, 의도와는 다르지만 기왕 어른이 되어버렸다면 어른이 어떤 건지 알고,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다. 집을 마련해야 해서 큰돈을 턱턱 대출받느라 오만 가지 서류를 떼며, 그로부터 몇 년 후에는 처음 계약했던 집의 전세보증금만큼을 계약금으로 내야 하는 집을 계약하며, 또 그 계약금의 네댓 배 되는 빚을 다시 지면서 ‘나 이 자식, 이렇게 서울특별시의 어른으로 거듭나는 건가’ 생각해보기는 했지만. 그런 식으로 끌려가듯 되는 어른 말고, 내가 되고 싶은 어른. 내가 닮고 싶었던 ‘진짜 어른’.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갖가지 인연으로 만나왔던 나의 어른들을 떠올려본다. 뺀질거리기 좋아하고 퇴근할 시간만 재던 철없는 신입사원이었던 내가 모셨던 첫 부장님. 쥐뿔 업무에 열정 같은 거 쏟아 본 적도 없으면서 업무 평가 때 익명으로 처리되는 줄 알고 지금 하는 업무 탈출하고 싶다고 징징대며 써냈던 내 의견을 진심으로 읽어주시고, 내게 더 나은 업무의 길을 선뜻 열어주셨던 부장님. 탓할 수 있는데 탓하지 않고, 공을 돌리지 않아도 되는데 기꺼이 공을 돌려주던 분들. 욕해도 되는데 안 하고, 분노와 미성숙함을 칭찬으로 고상하게 맞받아치는 능력이 탁월한, 칼을 녹일 줄 알던 분. 본인과 완전히 다른 의견일지라도 경청해주시는 분. 실수했을 때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를 꺼리지 않았던 분.


 분명히 많지는 않았다. 많지 않아서 더 소중하고 빛났다. 동시에 어려워 보였다. 될 가능성이나 자신감 같은 것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되고 싶다고 소망해보는 것뿐이다. 되기 위해 정의부터 내려보고 마음에 품어보는 것이다. 시작은, 되기 위한 것을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이니까. 이건 어쩌면 모종의 책임감이다. 서른셋이라는 내 나이에 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