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감의 나비효과

나를 키운 사람들

by 임우유
나이 서른셋이 되며 먹는 감정의 서른세 끼
#경이로움



호감의

나비효과


 ‘한 사람이 오는 건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오는 것’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며, 그래서 한 사람을 곁에 둔다는 건 무척이나 거대한 결심이라는 말을 오래전에 어느 PD가 쓴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이 말은 사실이다. 또한 연인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명제이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를 인지하기 시작한다는 의미요, 그 사람의 생활을 이루는 요소들과 그가 가진 호불호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어쩌면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안다(知)’는 한 단어로 설명하기엔 퍽 버거운 일일지도 모른다.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가 마침내 좋아하게 된다면 상황은 보다 심화된다. 가끔은 어이없다 싶을 만큼 그 사람의 상황에 몰입하게 되기도 하고, 쉽게 바뀌지 않던 취향이 단숨에 버려지기도 한다. 흡사 마음에 자기(磁氣)가 매우 강한 자석을 품고 있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을 둘러싼 편린 같은 철가루들이 찰싹, 마음에 달라붙는다. 철가루가 잔뜩 달라붙은 나의 마음은 점점 제 부피를 키워가고, 늘어난 마음의 무게에 비례해 조그맣던 내 세계도 점차 확장한다.


 ‘사랑’이 궁극의 감정몰입을 가능케 하는 감정이기에 해낼 수 있는 것들도 그만큼 많겠지만 가끔은 사랑 이전의, 호감의 최정점에서 흠모한 몇 사람이 더 유효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대단하게 열정을 바쳐 좋아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이 호감의 최정점 단계에서 좋아한 인물 중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요조 언니다.


 요조 언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노래를 통해서였다. 솜사탕 같은, 파스텔톤의 상냥한 음악과 목소리가 좋아서 MP3 파일을 받아 몇 날 며칠을 반복해 들었었다. 그 언니를 검색해보니 싸이월드도 아닌 것이, 뭔가 유니크한 자신만의 웹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흰 바탕에 군더더기 없이 사진과, 이따금 까만 글씨로 수놓은 메모들이 있었다. 그 짤막한 메모들을 웹페이지를 들락거리며 여러 번 읽었다. 언니는 담배를 피우는 것 같았다. 흡연자라면 질색하지만 요조 언니라면 왠지 상관이 없었다.

 웹페이지를 오가던 발걸음이 멎었을 때쯤, 우연히 한 커뮤니티 인기글로 올라왔던 언니의 글을 읽게 됐다. ‘당신의 내일 같은 건 관심도 없다’며 끝나는 그 글을. 처음 그 글을 읽었을 때의 감상을 나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펑펑 우는 와중에도 자신이 겪어낸 슬픔을 그런 식의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는 에세이로 풀어낼 수 있다는 데 적잖이 놀랐다. 뛰어난 에세이스트로서의 언니를 처음 알게 되었다. 가수 요조로는 알 수 없었던 면모였다.


 언니가 계동에 조그만 책방을 차렸다고 했다. 호기심이 동했다.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초행길을 꾸역꾸역 찾아가니 까아만 동공에 맑은 눈빛을 가진 언니가 조용히 책방을 지키고 있었다. 모르는 작가가 쓴 모르는 책을 집어 계산하고 나왔다. 언니는 책방에서 책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종종 조그만 행사나 워크숍을 열기도 했는데, 한 번은 ‘여류시인 낭독회’라는 행사를 열었다. 다짜고짜 참여 신청을 했다. 그저 언니와 한 공간에서 말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일차원적인 기대에서였다. 가서 보니 다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여성 시인들의 수에 비해 알려진 이름이 너무도 적었던 것이다. 좋은 시를 쓰지만 수면 위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여성 시인들의 시들만 골라 낭독해보고 소감을 나누어보는 밤 시간은 따뜻하고 충만했다.


 가수이자 책방 주인으로서 언니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을 계속 지켜보았다. 책방엔 직원 4호로 ‘태재’라는 사람이 고용된 것 같았다. ‘태재’, 모르는 이름이었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는 없는 책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었다. 호기심에 그의 책을 사려니 파는 데가 별로 없었다.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묻는 내게 그는 ‘오키로북스’라는 곳에 몇 권 있을 거랬다. 오키로북스에서 책을 샀다. 배송받은 그의 책들을 읽고서 독립출판이라는 것이 닿지 못할 신기루 같은 것은 아니구나, 어깨를 으쓱할 수는 있게 되었다.


 태재 작가는 책을 몇 권 더 내더니 ‘에세이 스탠드’라는 글쓰기 수업을 시작할 거라고 했다. 에세이라……. 어릴 때 곧잘 글을 쓰던 내가 한 번쯤 만져보고 싶은 단어였다. ‘에세이 스탠드’라는 수업을 들었고, 3주간 즐거운 글쓰기를 했다. 그때 만난 동기 중 하나는 내게 ‘이슬아’라는 작가를 추천해주었다. 요즘 굉장히 핫한 작가인데, 글이 정말 끝내준다고 했다.




 그 뒤는- 그 뒤는 어쩐지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요조 언니 하나가 쏘아 올린 작은 공으로 내겐 그렇게 오만 가지 철가루들이 따라붙었다. 에세이, 독립서점, 오키로북스, 태재, 스토리지북앤필름, 독립출판, Unlimited Edition, 이슬아, 페미니즘, 채식……. 이제 나는 한 권의 독립출판 서적을 펴낸 사람이 되었고, 요조 언니가 지펴준, 에세이를 쓰고 싶은 희나리를 잘 보듬어 브런치에 글도 쓴다. 조그맣던 내 세계의 네 귀퉁이를 잡아당겨 외연을 확장했음은 물론, 영혼을 달랠 시간을 보장받은 것은 덤이다.


심심해서 도식화해본 ‘요조 언니에 대한 호감의 나비효과’


 앞으로도 나의 마음에는 이런 식으로 철가루들이 달라붙을 것이다. 그렇게 점점 묵직해지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이의 시야에 업혀 열심히 노를 저으며 나의 세계를 확장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선물일 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누군가를 좋아해서 묵직해지는 마음으로, 드넓어지는 당신만의 세계를 선물 받기를 바란다. 퍽 근사한 일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