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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Feb 15. 2022

깨진 독과 보수공사

〈그해 우리는〉 리뷰... 그런데 이제 인생 리뷰를 곁들인

다시, 손으로 #02

깨진 독과 보수공사



 ‘재회’라는 키워드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드라마가 한 편 있다. 올해가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더 좋은 드라마를 발견해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드라마, 〈그해 우리는〉이다.

 이 드라마의 플롯은 제법 심플하다. 전교 1등(국연수, 김다미 扮)과 전교 꼴등(최 웅, 최우식 扮)이 함께 하는 모습을 담아낸 다큐멘터리가 10년 만에 역주행하면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자 서로 5년간 만났다 헤어진 주인공들이 5년 만에 운명처럼 재회하게 된다. 클리셰지만(참고로 클리셰 좋아함) 그렇게 재회한 두 사람이 묻어왔던 서로에 대한 사랑을 다시 떠올려내고 서로를 더욱 깊숙이 알아가는 이야기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드라마 속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한 번도 멈춰본 적 없는 것처럼 보인다. 5년간의 연애를 마치고 헤어질 때도, 사랑이 소멸해서 헤어진 것은 아니었으므로. 연수의 집은 늘 가난했고, 그 점이 유복하게만 커 온 웅이와 대조되는 것이 쓰라렸던 차에 마침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닥쳐버린 가난의 덫에 발이 찔려 더는 연애를 지속할 수 없어졌기 때문에 둘은 헤어지게 됐을 뿐이다. 모든 걸 의지와 상관없이 잃어버린 그때의 연수에게, 웅이는 자신의 의지로 버릴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고.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서로를 할퀴었던 과거의 벽에 부딪히며 다시 서로에게 날을 세우기도 하고, 일순간 햇살에 녹아내리는 눈처럼 마음이 녹아 불쑥 입을 맞추기도 하지만 재회의 끝, 그러니까 ‘커플’로서 다시 자리매김하는 것에는 여러 차례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웅이는 연수에게 굳이 ‘친구’로 지내보자고 제안하기까지 한다. 사랑이 말라붙지 않은 자리에 우정이 싹틀 수는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어쩌면 그 제안은 5년 전 자신에게 이별을 고한 연수에게 상처를 내고 싶었던 치기 어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감출 수 없는 세 가지는 가난과 기침, 그리고 사랑이라고 누군가 그랬던가. 억지 친구로 지내던 두 사람은 어느 밤 어묵탕을 앞에 두고 만나 술 한잔하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게 된다. 이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사랑했던 장면도 바로 이 장면이었다.


〈그해 우리는〉 11화 엔딩 (곧 잘릴 수도..)


 “보고 싶었다, 국연수.”


 갑자기 튀어나온 웅이의 말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벅찬 표정으로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연수에게, 웅이는 이어서 보고 싶었다고,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이상하게 연수를 보는 게 화가 나고 밉고 그랬는데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냥 너가 날 사랑하는 걸 보고 싶었나 봐. 나만…… 나만 사랑하는 널 보고 싶었나 봐.”


 드라마에서도 중후반부에 가서야 밝혀주는 사실이지만, 평생 사랑둥이로 커왔던 것 같았던 웅이는 사실 입양아다. 상호에 ‘웅이와’가 들어 있는 가게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는, 그 골목을 주름잡고 있는 요식업계 사장님인 부모님을 두고 자라온 웅이에게도 채워지지 않는 밑동 뚫린 사랑 독이 있었던 모양이다.


 “연수야. 나 좀 계속 사랑해줘. 놓지 말고 계속… 계속 사랑해. 부탁이야.”


 웅이의 말에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연수의 모습, 그 둘이 앉은 테이블을 줌 아웃하며 장면은 전환된다. 물론 연수와 웅이의 사이도.


 대사의 마지막쯤에 나온 ‘계속 사랑해’에서 나는 오래도록 멈춰 있었다. 만약 그 부분이 ‘계속 사랑해줘’로 끝났다면 이런 마음이 들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건 어쩌면 계속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간절한 부탁인 동시에 앞으로 연수에 대한 사랑을 지속하겠노라고 말하는 사랑 고백이기도 해서였다.

 양어머니, 양아버지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는 유년기를 보냈으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에 뚫린 구멍을 메우지 못한 채 자란 웅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사랑과 보필이 혹 세상을 일찍 떠나버린 친자식에게 빚진 것일까 봐, 늘 눈치를 보고 살아온 웅이. 그런 웅이에게 연수는 나의 의지로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한때 나의 의지로 버릴  있었던 유일한 사람, 그리고 한때 나의 의지로 가질  있었던 유일한 사람.  치명적이고 숙명적인 관계성의 끝이 순수하고 순결한 사랑 고백으로 완결되는  장면을   있어서 나는 너무도 기뻤다. 어릴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빠와 이른 이별을 하게 되면서,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 ‘  자라오면서 필연적으로 애정 결핍에 시달려 왔다고 생각해  사람으로서. 어릴  불가역적이고도 촘촘한 서사로 쌓아 올려진 애정 결핍을 허무는 일은 몹시도 어렵다는  깨달아버린 사람으로서. 이를테면 어떤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숙명적으로 깨져버린 마음의 독에,  깨진 자리에  들어맞을  같은 어떤 조각을 찾아낼 수도 있다는 희망을 나는  장면에서 알아차렸던 것이다. 인생에 어느 소중한 사람을 만나 그렇게 깨진 독을 보수공사할 수만 있더라도 삶은  따뜻할  있다는 것도. 그동안 무수한 실금을 메워  소중한 사람이  곁에도 있어, 이미 어떤 상처의 흔적은 무척이나 어졌다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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