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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 Mar 20. 2023

지금 내겐 확신만 있을 뿐

비개발자의 개발 부서 적응기

This is the moment
When all I've done
All of the dreaming,
scheming and screaming become one.
This is the day
See it sparkle and shine!
When all I've lived for becomes mine!


나는 내 직업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는 것도 참 감사하지만, 내가 내 직업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러 분야를 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테크니컬 라이터다.


2013년 테크니컬 라이터로 일을 시작해 어느덧 10년째가 되었다.

하지만 현재 난 우리 팀에서 3년 차 초보 테크니컬 라이터다.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그해 여름 미국에 갔다. 유학 가기에 어중간한 나이긴 했지만, 나름 꽤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아빠가 영어 선생님이었기에 어렸을 때부터 영어 공부를 했었다. 그래서  적응할 거라고 믿었다.


하루는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중 어느 거대한 중학생이 "What's your name?"이라고 물었다.

아무것도 아닌 질문이었는데, 나는 잔뜩 긴장해 "I'm fine."이라고 대답했다. 내 이름이 Fine이 되는 순간, 나보다 더 당황한 중학생의 눈빛이 느껴졌다.  그 정도로 내 자신감은 바닥을 치는 것도 모자라 해저 광케이블을 심어도 될 만큼 심각한 수준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고등학교 11학년 수업을 들었다.

단 두 페이지짜리 소설을 읽는 영어 숙제를 하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를 악물고 숙제를 끝낸 후 펑펑 울었다. 힘들어서도 있었지만, 이 정도도 할 수 없는 스스로가 너무 싫었다. 나를 놀리는 미국 애들이 미웠지만, 놀림을 받는 수준의 내가 더 싫었다.


그런데, 지금 회사로 이직한 후 비슷한 감정을 수시로 느낀다.


우리 팀의 다른 분들과 난 출발선이 다르다.

대학교 4년, 혹은 대학원까지의 공부 시간, 거기에 실무까지 더하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칠 때가 있다. 사실 아주 많다.


속도가 나지 않을 때,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뚝딱뚝딱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선후배를 볼 때, 마음이 참 어렵다.


개발 문서를 이해하고 재작성해야 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내용을 무조건 이해해야 한다.


외계어로 써진 개발 문서를 처음 접했고, Git이라는 것도 처음 봤으며, 터미널이라는 것도 처음 열어봤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매일이 까막눈이 된 기분이었다.


이 회사에 들어온 자체가 나에겐 기적이다.


두 페이지 글을 못 읽어 쩔쩔매던 예전 그 감정이 떠올랐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랬던 내가 Technical Communication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영어로 수업을 듣고 발표도 하고, 심지어 원어민의 과제물을 검수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인내하는 길은 결코 막다른 길에 막히지 않음을 이미 경험했기에, 지금이 힘듦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Let's look at the other side of the coin. Trust yourself.



1. 작은 목표를 세우자. 실력이 부족한데 목표가 크면 절대 이룰 수 없다

2. 인정하며 만족하자. 나는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3. 집중하자. 잘 모르는 분야이다 보니 어려워서 집중력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이겨내자.

4. 포기하지 말자.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이러다 보면,

내년 이맘때쯤엔 꾸준함에 속도도 붙어 더 빨라지지 않을까.




덧.


글이 제목과 시작에 붙인 가사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일명 ‘사골‘이라 불리는 <This is the Moment>의 일부분이다.


애정극인 데다가 넘버도 너무 좋은데, 가사마저 찰떡이라 인용했다. (물론 약을 주사하거나 또 다른 나를 만나러 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이왕 흥얼거리는 거 한국어 가사도 붙여본다.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날 묶어왔던
사슬을 벗어던진다
지금 내겐
확신만 있을 뿐
남은 건 이젠 승리뿐


덧2.


이 글은 이틀 전에 쓴 글이며, 2년 전 첫 출근 날에 촬영한 내 책상 사진을 대표 이미지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미지는 반짝반짝 크리스털 같은 회사 선배에게 오늘 받은 빼빼로다.

공장에서 랜덤하게 찍혀 나온 저 문구의 빼빼로가 내 책상에 올려졌을 때 운명인가 싶었다.


서두르지 말고, 멈추지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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