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후밀 흐라발 저/이창실 역
#북리뷰#독서노트
한번 책에 빠지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책 속에 있기 때문이다. (중략) 날이면 날마다, 하루에도 열 번씩 나 자신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16쪽)
...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읽노라면 문학의 마술적인 힘에 휩쓸려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 옮긴이의 말 중
짙은 초록색 덧표지를 벗기면 까만 양장 표지가 나온다. 거기에 그려진 네모 3개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 네모 3개는 책이 겹겹이 쌓여있는 모습 같기도 했고, 가운데의 가장 작은 직사각형은 한탸의 지하 작업실처럼 보이기도 했다.
표지보다 훨씬 매력적인 책의 내용은 나 같은 범인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의식의 흐름이었다. 그래서인지 한 페이지 걸러 거의 모든 말을 곱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책은 짧은데 후기가 정신없고 복잡하고 길어진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두서없이 떠올랐던 생각을 다음 키워드로 정리해 보았다.
보후밀 흐라발과 한탸
#독백 #고뇌 #알아야해 #나의길
인간
#인간적인것 #지키려는것
붉은색과 녹색 버튼
#전진과후퇴
압축기
#변화 #사라지는것들
생쥐
#소외된사람들
#독백 #고뇌 #알아야해 #나의길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지킬이 지키고자 했던 삶, 지킬이 동경하고 추구했던 삶, '선'으로 그려지는 지킬과 대비되는 하이드의 마음, 하이드가 원했던 것, 영국의 상류 사회와 노동 계층 등 인간의 이중성과 그에 관한 고찰이 참 재밌는 작품이다. 지킬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선과 악을 분리하는 것이 인류를 위한 발전이라 믿으며 - 한탸와는 다른 결의 고집스러움으로 자신을 파괴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책을 떠올리며 후기를 쓰는 내내 <지킬 앤 하이드>의 넘버 중 「I Need to know(알아야 해)」와 「The Way Back(나의 길을 가겠어)」가 머리에 맴돌았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9)
이 책을 처음 집어 들고 마주한 문장이다.
1장을 읽으면서 나가 누구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작가인지 허구의 인물인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다. 책을 두 번째 읽었을 때 나는 작가 자신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읽었을 때는 굳이 누구인지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체코는 보후일 흐라발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며 공산주의 체제의 감시 아래 작가 활동을 했지만, 마치 소장의 감시 아래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한타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평생 책과 함께 살았다.
마치 백지를 꾸리는 곳으로 가지 않고 남아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하며 자신이 숭배했던 책과 한 몸이 되었던 한타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출판을 위해 프랑스로 가버리지 않고 체코에 남아 체코어로 작품을 쓰며 책 자체가 되었다.
보후밀 흐라발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세상에 왔다고 했다. 한탸는 "사람들의 지극한 불행과 지극한 행복에 대한 책(12)"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런 작가와 한탸는 어떤 말을 건네고 싶었을까?
#인간적인것 #지키려는것
한탸가 느끼는 세상은 인간적이지 않았다. 그도 인간적이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인간'은 다음과 같은 뜻을 갖고 있다.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
사람이 사는 세상
일정한 자격이나 품격 등을 갖춘 이
마음에 달갑지 않거나 마땅치 않은 사람들 낮잡아 이르는 말
생각을 하는 인간, 인간은 사고를 한다. 그것이 인간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사고하는 인간 역시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는 것도,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고라는 행위 자체가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12)
사고하는 행위가 인간의 특징인데, 사고하는 인간이 인간적이 아니라는 것과 사고하는 것이 상식(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과 충돌하는 것 자체부터 흥미롭다.
전쟁 속에서 귀중한 장서들이 금서로 지정되고 파괴된다. 그 책들은 "그저 킬로그램당 1 코루나에 팔릴 가치 없는 것들(23)"이었다. 부브니 사람들 역시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며 그 안에 숨겨진 가치 따위는 전혀 아랑곳없이 냉정하게 작업을 이어갔다(94)." 한탸는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인류의 작업(94)"을 지켜봤다. 한탸 역시 인류인데, 부브니 사람들과 자신을 구분 짓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한탸는 "보수를 받고 일하는 사람일 뿐(99)"이며 "부브니 사람들처럼 무심하고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저녁엔 일을 모두 마치고 쓰레기도 말끔히 치워, 나도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100)"인다고 말한다. 생각 없이 비인간적인 모습(인간은 생각을 하는 동물이므로)으로 일하는 것이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너무나 현대사회의 모습을 말하는 것 같아서 충격이었다.
책을 읽는 것-책의 가치를 아는 것-사고하는 것-인간적이나 비인간적인 세상과 충돌한다
책을 읽지 않는 것-책의 가치를 모르는 것-사고하지 않는 것-인간적이지 않지만 세상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충돌하지 않고 살 수 있다
이렇게 이분화할 순 없겠지만, 사고하면 할수록 세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비인간적이 되는 것일까? 세상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나 또한 사고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러면 책을 혐오했던 만차처럼 성스러운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일까?
한탸는 "압축통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들이 무감각한 흙덩이인 양, 그렇게 일"하며 "이 지하실에서 녹슬어가던 기계로서는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리듬(98)"을 느꼈음을 고백했다.
인간적으로 살고 싶었지만 비인간적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또 '그들'과 구분되고 싶었지만 '그들'의 일부가 되어 가는 자신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들은 비인간적으로 살지만 만차처럼 무엇인가가 되고 있고, 자신은 인간적으로 살고자 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패배감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부브니가 기계가 인간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책을 파괴하지만, 자신은 인간적인 모습을 간직하며 스스로를 파괴하는 길을 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전진과후퇴
개인의 감정과 상관없이 사회는 변한다.
내가 그 변화를 맞을 준비가 되어있는지 아닌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처음에 한탸는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미래로의 전진)과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근원으로의 후퇴)을 이야기한다. 그러다가 책 중반쯤부터는 프로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근원으로의 전진), 레그레수스 아드 푸투룸(미래로의 후퇴)을 말한다.
니는 폐지를 압축한다. 녹색 버튼을 누르면 압축판이 전진하고, 붉은색 버튼을 누르면 후진한다. 이것이 세상의 기본적인 움직임이다. (44)
내가 보는 세상만사는 동시성을 띤 왕복운동으로 활기를 띤다. 일제히 전진하는가 싶다 가고 느닷없이 후퇴한다. 대장간 풀무가 그렇고, 붉은색과 녹색 버튼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내 압축기가 그렇다. 만사가 절룩거리며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지는데, 그 덕분에 세상은 절름발이 신세를 면하게 된다. (69)
전진이 곧 후퇴인 셈이지. 그래, 프로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과 레그레수스 아드 푸투룸은 같은 말이야. 너의 뇌는 압축기와 짓이겨진 한 꾸러미의 사고에 불과하지. (119)
한탸는 "왜 노자가 태어나는 건 나오는 것이고 죽는 건 들어가는 것(129)"이라고 했는지 의문을 가졌다. 단순히 생각해 보자면...
나오는 것- 프로그레수스, 전진, 미래로 나가는 것, 새로움, 태어나는 것, 과거에서 나오는 것
들어가는 것- 레그레수스, 후퇴, 퇴보하는 것, 오래된 것, 죽는 것,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는 것
한탸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는 것조차 후퇴라고 생각할 수 있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사회는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발전한다. 불가항력적으로 전진과 후퇴는 동시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변화 #사라지는것들
한탸의 지하실엔 한탸, 쥐, 파리, 폐지 정도만 있다. 가끔 집시 여인이 찾아오고 환상의 존재가 나타나긴 하지만, 한탸는 그곳을 홀로 지킨다. 그는 그의 세상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삼십오 년째 압축기로 폐지를 압축해 왔지만 오 년 후면 나도 내 기계와 함께 은퇴한다. 하지만 이 기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고 나는 저금을 하고 있고, 저금통장까지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함께 은퇴할 것이다...! (17)
삼십오 년 동안 나는 폐지를 압축해 왔다. 내게 선택권이 다시 주어진다 해도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35)
삼십오 년 동안 나는 내 압축기에 종이를 넣어 짓눌렀고, 삼십오 년 동안 이것이 폐지를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어왔다. (87)
삼십오 년 동안 나는 내 압축기로 폐지를 압축해 왔고, 언제까지나 그렇게 일할 거라고 생각했다. 은퇴를 해도 내 압축기는 나와 함께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105)
하지만 그곳은 바깥세상의 영향을 받는다. "새 인간, 새 방식과 더불어 바야흐로 새 시대의 막(92)"이 오르면서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도 굳게 믿었던 그의 세상은 서서히 무너진다.
... 안전하다고 느껴졌던 모근 것이 자취를 감춘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공포가 인간을 덮친다. (75)
그 무엇도 나를 내 지하실에서 몰아낼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자리를 바꾸게 할 수 없을 것이다. (131)
삼십오 년째 폐지 더미 속에서 그만의 세상에서 살던 한탸는 새로운 문물을 접한다. 노동자와 기계, 삶의 방식의 변화, 그로 인해 달라지는 가치관, 더 이상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는 관습, 사라져 가는 사상 등 달라지는 세상의 진실을 마주한 순간, 자신의 세상이 끝나가는 것을 직감한다. 그는 지켜온 삶을 지키기 위해 "책들에 둘러싸여 쉴 새 없이 표징을 구했으나 하늘로부터 단 한 줄의 메시지도 받지 못했다(104)." "살아내려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그것들(112)," 한탸의 삶을 지탱하는 그것들이 없어진 한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소설 속에서도 한탸는 패배자 또는 실패자지만, 만차는 성공한 사람처럼 그린다. 어떤 세상적인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한탸가 말하는 '실패'는 전진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외된 계층을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세상은 전진하지만 그들은 뒤쳐지고 남겨지고 조용히 사라진다. 반면 만차는 성스러움의 경지에 이르고 어떤 무엇인가를 이루기도 한다. 오물과 같은 한탸, 성스러운 만차. 더 이상 쓸모없다고 판단되는 고귀한 책(폐지)을 모두 짓이기고 깨끗한 백지를 만드는 이 과정에서, 아무것도 없는 새로운 백지가 성스럽다 여겨지는 그 복잡한 비유였지 않았을까.
이러한 사회의 변화는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미래로 전진하는 사회의 변화를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속에서 잃어가는 인간의 인간됨, 사라져 가는 것들을 얘기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소외된 사람들
지하 세계에 사는 쥐와 끈적이는 피에 엮이는 파리가 자주 나온다. 특히 쥐들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은신처를 잃고 종족 간에 전쟁을 치른다.
문득 이 소설의 결말에, "녹색 버튼의 작동을 중단하고 폐지가 가득한 압축통 속에 (...) 작은 은신처를 마련했던(131)" 한탸가 생각났다. 끈적한 피에 끌려 고갱 씨와 함께 갇혀 있다가 제지 공장에서 용해될 파리의 운명은 스스로의 운명을 예언하는 듯했다. 책의 초중반에 나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한탸의 끝은 어느 정도 정해진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하다. 동시에 작가 스스로는 이런 결말을 쓰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도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행인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줄 <안녕하세요, 고갱씨!>였다. 울긋불긋한 이 멋진 트럭과 마주치는 행들 모두가 기쁨을 맛보리라. (중략) 푸른색과 녹색, 금갈색의 저 미친 파리들은 큰 상자들 안에 고갱 씨와 함께 갇혀 있다가 제지 공장에서 산과 알칼리 용액 속에서 용해될 운명이었다. 녀석들에겐 이미 부패한 이 피보다 더 좋은 게 세상에 없으니까. (66)
머리 위로는 뻥 뚫린 배기갱 너머로 별이 총총한 하늘이 보였고, 발밑에서는 프라하의 하수구와 시궁창마다 두 쥐 종족 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74)
생쥐 몇 마리가 자신의 종이 은신처를 잃고 여기저기서 떨고 있다. (중략) 나는 사시나무처럼 떨다가 녀석의 시선에서 별이 총총한 하늘을 능가하고 내 영혼에 깃든 도덕률을 능가하는 무언가를 보았다. (중략) 사랑은 지고의 율법이며, 이런 사랑은 연민이다. (76)
이틀 동안 내 지하실을 청소하며 생쥐들을 희생시킨 참이었다. 그저 책이나 갉아먹고 폐지 더미에 뚫린 구멍 속에 살며 그 작은 둥지 안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소박한 짐승들인데. (중략)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86)
평생에 걸쳐 내 안으로 스며들었던 텍스트들과 내 모든 사고도 함께....... 내 삶이라도 해봐야, 저 아래 내 지하실에서 사회주의 노동단원 두 명이 짓이겨대는 작은 생쥐 한 마리만도 못한 것이긴 하지만.....(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