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지브리 저/이선희 역
#북리뷰#독서노트
스튜디오 지브리 입체건축展은 2015년 9월 부산시립박물관에서 열렸다(참고). 이 부산 전시를 제외하곤 모두 일본에서만 열린 전시라고 하니, 이 전시회에 가지 못한 것이 더 아쉬웠다. 비록 전시회는 가지 못했지만, 이 책이 다시 나온다는 소식에 바로 예약한 후 구매했다. * 이 책은 2015년 8월에 발행한 버전의 발행자를 변경해 복간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지브리 작품을 좋아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사람을 떠나서, 지브리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과 그림체, 그와 매우 잘 어우러지는 음악이 좋기 때문이다.
표지에 그려진 유바바의 목욕탕을 보자마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책 구매 사이트에서 보면 표지 사진이 빤딱빤딱한 코팅 재질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책을 감싸고 있던 비닐을 제거했더니 ASMR 가능할 정도의 기분 좋은 두꺼운 종이 재질이 느껴졌다. 지브리스럽다는 느낌이 많이 났다. 테이블 위에 물 한 방울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바로 흡수할 것 같은 그런 도화지 같은 재질이라 아주 조심히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비싸기도 하다 ㅋㅋ)
표지는 접는 방식이었는데, 펼치면 이렇게 된다.
진짜 표지 재질은 관리하게 어려운 도화지 같은 걸로 해놔서 짜증 나지만, 색감이나 그림체는 참 부정할 수 없게 감동스럽긴 하다.
지브리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주인공들을 따라 머릿속에 그들의 세계가 그려지고 꿈같은 그곳이 마음 한 곳에 잔잔하게 남는 듯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나는 매번 볼 때마다 그런 느낌을 받는데, 단순히 내가 지브리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장면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설과 인터뷰를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건축가 후지모리 데루노부에 따르면 지브리의 건물은 구조가 확실하고, 디테일이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지브리 작품을 보면서 실제로 감탄하며 내뱉던 말이었는데, 건축가의 입장에서 쓴 글을 보니 확 와닿았다. "생생하다"라고 느꼈던 이유가 바로 확실한 구조와 꼼꼼한 디테일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 건물에 사는 캐릭터를 떠올리며 건축물의 재료와 건물(또는 방)의 위치도 고려했다고 한다. 그래서 분명히 상상의 공간인데도 어딘가에 분명 존재할 것만 같은 현실감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건물보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도로 주변에 오래전에 문을 닫은 듯한 상점이 있고, 그 간판건축의 건물에 페인트가 벗겨진 싸구려 간판이 달려 있다고 합시다.
지금은 이렇게 낡고 초라해진 가게라도, 처음 시작했을 때 주인은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며 손님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라든지, 그때 개업기념으로 손님들에게 무엇을 나누어 주었을까 라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손님의 발길이 점점 뜸해지고, 그러는 사이에 주인이 병에 걸려서 가게 문을 닫는 모습이라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대단한 건물이 아니더라도 흥미진진하게 건물을 볼 수 있지요. 내 멋대로 망상에 잠겨 있을 뿐이지만요.
그래서 나는 건물을 짓는 방법보다 건물에 사는 방법에 관심이 있습니다."
- 미야자키 하야오
이 책은 이렇게 구성된다.
먼저 지브리 프로듀서인 스즈키 도시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건축 세계와 그가 상상하고 만들어 낸 지브리 미술관에 관한 썰을 푼다. (지브리의 건축물, 6쪽)
그리고 건축가 후지모리 데루노부가 생각하는 지브리 작품 속의 건축물에 관해 설명하는데, 추억/그리움의 감정, 리얼리티, 산업혁명 기술의 표현, 불(화로나 아궁이의 등장), 자연과의 공존 등의 키워드로 구체화한다. (건축자이자 건축사가 본 지브리의 건축물, 18쪽)
그리고는 각 작품에 나오는 건축물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각 작품별 페이지는 이렇게 구성되는데, 먼저 영화 정보와 짤막한 설명이 먼저 나온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스케치와 해설이 나온다. 어떤 건물을 참고했고, 또 어떤 느낌을 주고 싶었는지 자세히 묘사한다. (연두색 배경의 동물이 하야오 감독의 해설이고, 청색 배경의 사람 모습이 건축가 후지모리 데루노부의 해설이다.)
적지 않는 작품이지만, 각 작품의 건축물을 위해 엄청난 양의 참고 자료를 연구하고 정말 많은 디테일을 꼼꼼하게 살폈다는 것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건축 양식을 모티브로 삼아서, 작품의 시대/장소 배경에 맞춰 적용했다고 한다. 건물 외관의 색에도 뜻이 있었다는 점도 놀라웠다.
내가 좋아하는 지브리 작품의 건물이 어떻게 구상됐는지를 알 수 있어 흥미롭기도 했고, 감독의 스케치를 보면서 마음이 평안해지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오늘 저녁엔 지브리를 다시 봐야겠다.
덧. 관리하기 어려운 도화질 재질의 표지라는 것이 나는 지브리 감성 같아서 좋았지만, 내가 제일 별로라고 생각했던 점은 책을 쫘악 펼치지 못하는 제본이라는 것이었다. 책 갈라질까 봐 고개 좌우로 열심히 돌려가며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