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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s Playlist] 인생곡 #2

by ALGORITHM


이미 주제를 아무도 관심 없을 필자의 인생과 관련된 음악으로 삼아버린 탓에 수많은 수작들을 배제해야 하는 점이 아쉽게 느껴지는 시리즈다. 다음부터는 괜한 의미부여 말고 그냥 알량한 음악적 지식 과시하는 글이나 써야겠다. 위의 곡은 지금 심정을 반영해 그냥 BGM 느낌으로 넣었다. 차에서 들으면 좋더라(차 없음).


4. Bryson Tiller - Don't

......Don't!

Bryson Tiller - Don't 中

아무래도 나의 음악적 가치관은 2015년 즈음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바이럴'이라는 말도 흔치 않던 그 이전에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요즘 뜨기 시작하는 음악이라고 소개하면 그걸 좋다고 느끼기도 했고, 힙합엘이 국내게시판 따위에서 샤라웃하는 실력에 비해 안 뜨는 래퍼들의 앨범을 들으며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나름의 디깅으로 알아온 음악들을 친구들에게 들려주면 "이게 진짜 좋아? 난 잘 모르겠어"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 난 '나만 좋으면 됐지'라며 오히려 내 취향이 유니크한 것이라고 자위하곤 했는데, 지금 와서 그때 들려줬던 음악들을 생각하면 제발 그 친구가 그 대화를 까먹었길 바라게 될 뿐이다.


그렇게 유목민 생활을 하던 나에게 이정표를 세워준 [T R A P S O U L]. 지금 보니 우스운 띄어쓰기와 단어 선택이지만 나는 평생에 단 하나의 앨범을 들어야 한다면 이 앨범을 포함해 고민할 것 같다. 당시 진정한 리스너라면 앨범을 통으로 들어야 한다는 소명 하에 억지로 '명반'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을 인트로부터 아웃트로까지 붙들곤 했는데, 진짜 좋은 음악으로 채운 앨범이라면 듣는 데 노력 따위 필요 없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이건 진짜다. 그간 취향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틸러의 그루브를 맞이하기 위한 여정에 불과했다. 그를 보며 내가 흑인이 아닌 것이 아쉽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담으로 그는 해당 앨범으로 새로운 장르의 포문을 연 이후에는 하입을 받지 못하며 '원 히트 원더'라는 수식어를 달게 되었다. 다만, 필자는 그의 후속작들도 수작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며, 시간이 나면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아무튼 브라이슨 틸러는 그냥 남들이 좋다는 것 말고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접했을 때의 느낌을 생생히 알려주었다. 트랩소울 앨범만 하더라도 좋은 곡들이 많지만, 'Don't'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기에 선정해 보았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한 다른 아티스트로는 Summer Walker가 있다.


5. BIGBANG - BAD BOY

매일같이 웃어주는 네 곁엔 내가 너무 어려

BIGBANG - BAD BOY 中


아무리 안 좋아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이 있다. 필자에게는 빅뱅이 그렇다. 아니 사실 멀리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지금은 끝나버린 것 같지만. 빅뱅은 인생곡 하나로 설명하기엔 너무 큰 존재이며, 인생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그들을 보며 필자는 윤리적 기준을 슬쩍 내리기도 했을 정도다. 특히 무대 위의 지드래곤은 멋짐이라는 말을 형상화해놓은 신처럼 보였으며 그의 모든 것을 흉내 내고 싶었다. 더 이상의 빅뱅에 대한 예찬은 나중에 따로 글로 정리해서 써볼까도 한다. 잡설은 각설하고 빅뱅이 앨범을 낼 때마다 한동안 그것만 들었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빅뱅 노래는 계속해서 바뀌곤 했다. 그런데 그들이 활동을 하지 않게 된 지금까지도 가장 손이 가는 노래는 아무래도 'BAD BOY'였다.


자정에 발매되는 [ALIVE]를 듣기 위해 야자가 끝나고 사감 선생님의 감시를 피해 이불속에 숨어 멜론을 켰던 기억이 난다. 앨범 페이지로 들어가니 수록곡 전부에 타이틀곡 뱃지가 붙어있는 광경이 펼쳐졌는데, 앨범에 대한 그들의 자신감, 패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인트로부터 '우린 이 앨범을 기점으로 아티스트가 됐어'라고 외치는 듯 시작한 앨범은 서정적인 'Blue'와 발랄한 느낌의 (내 취향은 아닌) '사랑먼지'를 거쳐 BAD BOY로 도달했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팍 꽂히는 멜로디라고 할 것이 없었음에도 이 노래는 뭔가 달랐다. 처음 접해보는 방식의 아련함 덕분에 한동안 다음 트랙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Bad Boy에 머물러야 했다.


명곡의 기준 중 하나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시대의 흐름에 대한 거부라고 생각한다. 그때에만 좋은 노래는 절대 명곡으로 평가받을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문세, 김건모, 유재하의 음악이 명곡이라 불릴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빅뱅의 노래 중, 아니 K-Pop 중 가장 명곡에 가까운 노래 중 하나가 배드 보이라고 생각하며, 앞서 나열한 이들의 음악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랑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반박 시 음알못.


6. 브라운 아이드 소울 - 술 (C2H5OH)

투명보다 맑은 빛으로 내 곳곳에 너 스며들면
어둠 속에 잠겨버린 이 세상마저 다 잊을 수 있어

브라운 아이드 소울 - 술 (C2H5OH) 中


많은 이가 그러했듯 중2병이 찾아왔을 시절 가창력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축제 등의 무대에 올라 친구들을 노래로 열광시키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는데, 현실은 그냥 열심히 하시는 분이었다. 당연히 나얼에 관심을 갖게 됐고, 당시 유명했던 '귀로', '가지마 가지마' 등을 거쳐 브라운 아이드 소울에 이르렀다. 'My Story', '정말 사랑했을까', 'My Everything' 등을 들으며 가창력의 정점을 느꼈고,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팬을 자처하기 위해 다른 수록곡들도 들어보았는데, 유명하지 않은 곡 중에서는 유려한 스킬을 뽐내지 않는 곡들이 많아 당황스러웠다. 내가 나얼의 성대를 가졌다면 앨범의 가창을 모두 꺾기로 채우는 것은 물론, 일상에서 말을 할 때도 타령총각마냥 노래로 할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노래를 가장 잘한다는 사람은 생각보다 담백한 작품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 그중 술을 객체로 삼아 노래하는 '술 (C2H5OH)'은 마치 듣다가 잠이 올 것만 같은 잔잔함이었는데, 왠지 자꾸 찾게 되더라.


그렇게 '빼기의 미학'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게 된다. 혈기왕성함을 내세워 더욱 센 자극만을 찾다가 처음으로 슴슴한 매력을 느낀 순간이었다. 기교가 좋다고 좋은 것이 아니며,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하는 것이 좋은 예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모든 잔잔한 노래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루는 나얼이 진행하는 라디오를 기다려서 들었는데, 멘트라고 할 것 없이 잔잔한 재즈풍 흑인음악만을 들려주는 진행 방식에 팬심은 포기하고 중간에 끄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접근은 지금까지도 최대한 다양한 톤의 예술을 접해보고자 하는 태도를 갖는 데에 초석이 됐다. 그땐 나이가 들면 자연히 나얼처럼 성숙한 취향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피아노 반주곡도 가끔씩 찾아 듣는 만큼 그가 다시 라디오를 진행하면 절반 이상은 들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음악은 때때로 특정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반대로 특정 시점을 떠올리면 어떤 음악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음악은 우리의 삶과 얽혀 있으며, 그 누구라도 '인생곡'이라고 부를만한 곡들이 있을 것이다. 내 경험을 정리하며 꽤나 많은 장면들을 추억할 수 있어 꽤 흥미로던 만큼 여러분들도 이 글을 통해 삶에 있어 주요했던 음악에 대해 떠올리는 기회가 됐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어떤 기억이라도 음악과 추억보정의 힘으로 아름답게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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