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Memento Mori

by ALGORITHM
나는 인생에 대해서 얘기를 꺼낼까 하였으나 자신이 없었다.
내겐 생활마저 실감이 가지 않는데, 삶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한등] 황석영


나는 황석영의 ‘한등’에 나오는 이 구절을 곱씹고 곱씹었다. 생활이 실감 난다는 게 어떤 말인지 와닿지 않았지만, 삶에 대해 말할 자격을 얻을 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을 적어 두고 잊을 만하면 들여다보곤 했다. 살면서 생활을 실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아니 있기는 할까? 나 역시 삶을 실감해 보지 못한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저 일어나면 살아가고, 졸리면 자는 그저 그런 굴레에 빠져 있었다. 목적 없는 권태와, 변화 없는 지난함에 지쳐갈 무렵이었다.


한 번은 뭔가를 간절히 원했던 적이 있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그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이 소망은 전혀 새로울 것 없었다. 청소년기엔 일상이었고, 성인이 된 지 한참이 지난 내게도 십몇 년을 끊어내지 못하고 따라다녔던 두려움이었다. 나는 밤을 못 새운다. 그래서 체력이 버티는 정도에서만 최선을 다하는 데 머물렀다. 어느 순간 피곤과 하중이 견딜 수 없는 수준에 이르면, 애초에 목표했던 결과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끝나기 만을 기다리게 되곤 했다. 그 순간 스스로가 범인임을 깨닫고 실망했다. 나는 참 별스러웠다.


그날은 하중을 이겨보겠다며 새벽을 지새웠다. 돌이켜보면 그건 간절함보다는, 내게 벌이는 일종의 시위였다. 그리고 다음날 밤 나는 많이 아팠다. 열이 잔뜩 끓어올라 새벽에 눈이 빠질 듯했는데, 생생한 고통을 느끼며 그때 나는 처음으로 삶을 실감했다.


‘아프면 모든 게 의미 없구나.’


‘사는 게 아니면 죽는 거구나.’


열과 오한. 인간에게 가장 흔한 증상을 앓으면서 나는 온몸의 감각이 살아나는 듯한 신기한 경험을 했다. 병마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싸워주는 세포 하나하나가 대견했다. 유약한 내가 하루를 살아낸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졌다. 잘 뛰던 심장이 어느 순간 멈출 것만 같은 공포를 마주해야 했다. 그건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했고, 나는 3일을 철저히 아파했다. 나는 두려워하며 삶을 느꼈다. 내 한계를 깨 보겠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웠고, 그 오기 한 번에 나는 그제야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잊지 마라. 삶을 실감한다는 건 결국 죽음을 잊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서 벌벌 떨고 있는 어느 암 환자의 회고를 읽고 나는 많이 울었다. 그리고 타지에서 그가 홀로 실감했을 삶이 측은했지만, 소중해 한 번 웃었다. 소박하지만 솔직한 그의 소회를 읽고 죽음을 떠올렸다면, 선물 같은 숨을 다시 들이켜보는 게 어떨까?



*


방사선실은 고요하다. 그리고 방사선실은 시끄럽다. 내 휠체어를 밀고 있는 간호사는 나에게 한마디 말도 걸지 않는다. 처음엔 괜찮냐는 표정으로 무릎을 굽혀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나를 올려다봤지만, 세 번째 치료 만에 그녀는 나를 보기를 멈췄다. 방사선 실 앞에 도착하자 건강해 보이는 두 중년이 나와 같은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그들 얼굴엔 살도 제법 있었고 안색도 꽤 건강해 보였다. 머리카락 역시 암 환자의 것이 아니었다. 유방도 나란히 솟아 있었다.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로 창 너머의 방사선 실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나와 같은 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상태는 내 상태를 유추하게 했다. 나는 그들처럼 되기를 원했다.


오늘 방사선 치료는 반신욕을 하듯 온몸 구석구석 시원한 잔상을 남겼다. 그래서 방사선 실을 나서며 난 처음으로 내 휠체어를 밀어주는 간호사에게 고맙다며 손을 목뒤로 넘겨 부드러운 손목을 어루만졌다. 병실에 도착하자 또 한 명의 한국인이 나를 반겼다. 그는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 하는지 나의 시선을 피해 창밖을 바라보다가 코로 킁 소리를 내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큰 형부였다. 나는 방사선 치료를 서른 번은 한 사람처럼 소회를 늘어놓았다. 괜찮냐는 이야기를 듣기 싫었다. 너무 많이 들었다. 그만큼 괜찮다고도 많이 말해야 했다. 나는 침대에 올라서지도 않고 휠체어에 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방사선 치료는 생각만큼 가볍지 않아요. 표적으로 쏜다고 해도 나를 치료하는 만큼 나를 죽이죠. 그런데 이게 만약에 치료되지 않는다면 내 안의 나는 죽기만 하고 더 약해질 뿐. 암세포로부터 나를 더 보호해 줄 제 세포들이 죽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다음 항암치료에 절실합니다. 최고로 잘 맞는 약으로 나를 죽여주세요. 나를 죽이는 내 안에 암세포를 죽여주세요. 그 누구의 바이러스로부터든 보호받고 최고의 상태에서 치료받고 싶어요. 하면서 속으로 되뇌는 거죠.”


서 있던 형부가 무릎을 굽혔다. 그제야 나도 그를 올려다보던 고개를 편하게 떨궜다.


“방사선 치료 통 안에 들어가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지금 이 방사선이 나를 마구 죽이는 데, 나는 그 통 안에서 죽어가는데 나는 기도를 해요. 암세포를 죽여달라고. 아주 간절하게 빌죠. 그리고 나오면 나는 치료를 했다는 기분 탓인지는 모르지만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껴요. 물론 아주 약간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제 안에 수많은 세포들이 방사선에게 학살을 당했는데 약간의 어지러움으로 끝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하긴 온몸에 암이 다 퍼지고 나서야 알았는데 그깟 세포들이 죽는다고 무슨 대수겠냐 싶다가도, 내게 얼마 남지 않은 세포들이 죽어가는 것 같아서 두렵기도 하고. 죽을 병에 걸리면 온갖 생각들이 많아져요. 마치 다 마지막인 것 같아서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모든 관계에 조심스럽고. 오히려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병원에 아무도 오지 않았으면 했어요.”


*



암을 앓으며 잔뜩 쪼그라든 그의 마음은, 수시로 흔들리며 두려워하다가도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는 것으로, 조심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집중하는 쪽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방사선 치료 후에 다가올 잔혹한 항암치료를 고대하며 철저히 파괴되길 원했다. 그 안에 세포들이 파멸돼 가면서 그는 삶을 느꼈고, 죽음을 느꼈다.


호흡을 느낀다는 것. 그건 어쩌면 미뤄 놨던 죽음을 느끼는 게 아닐까. 무의식 한 쪽으로 치워 놨던 삶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부조리. 죽음의 존재를 마주하며 나는 그제야 삶을, 생활을 실감하게 됐다.



The Body of the Dead Christ in the Tomb, by Hans Holbein the Younger, 1521, Kunstmuseum, Basel.


1

keyword
작가의 이전글[AI's Playlist] 인생곡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