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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恐怖)와 부재(不在)

by ALGORITHM

지난 5월 31일 새벽 6시 41분. 한산한 새벽 공기를 찢는듯한 굉음을 내며 재난문자가 도착했다. 경보음은 시간차를 두고 울려서 모든 벽을 뚫을 듯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수많은 재난문자를 무시해왔지만, 도무지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자 내용에 나는 짜증이 나기보다 덜컥 겁이 났다. 서둘러 열어 본 인터넷은 먹통이었고, 유튜브로 뉴스를 틀자 북한이 우주 발사체를 쐈다는 사실만을 반복해서 전달하는 앵커의 조급한 표정만 확인할 뿐이었다. 그리고 집 밖에선 민방위 대피 방송이 시작됐다.​


그 순간 서울 상공에는 미사일이 떠다녔다. 평양에서 쏘진 않았을 테니 풍계리 핵 실험장 어디쯤, 아니면 북한군 기지 어디선가 발사해서 서울을 폭격하는 데 걸리는 시간. 얕은 지식을 빠르게 동원해 어림잡아 보니 대피해 봐야 소용없다는 무력한 결론을 내린 나는 가족들에게 전화했다.​


“북한에서 미사일 쏜 모양인데, 대피하라고 문자 왔네.”​


아직까지도 유언을 남기지 않던 나는 오발령이기를 바라는 기대와, 북한이 미사일을 설마 쐈을까 하는 반신반의 덕에 태연한 척할 수 있었다. 몇 분 뒤 오발령이었다는 재난 문자가 오고 나서야 서울을 향해 수직 낙하하던 미사일이 사라졌다. 죽음을 눈앞에 둔 나는 이렇겠구나. 다가올 종말을 의심하겠구나. 제발 아니길 빌면서도 의연하게 마무리하겠구나. 결국 가족들에게 인사하고 가겠구나. 몇 가지 잡념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나는 잠들기를 포기하고 평소보다 훨씬 이르게 하루를 시작했다.

낮이 되자 잘못 온 문자 한 통에 죽음 앞에 서보기라도 한 듯했던 내 모습이 우스웠다. 수많은 전쟁영화들이 머리를 스치며 생존을 포기했던 무기력이 부끄러웠다. 문자 한 통은 과거의 기억들을 끄집어 내며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나는 두려워했다.

명작들 중에 이 공포의 원리를 잘 활용한 작품들이 있다. 영화 ‘양들의 침묵’은 오직 상상력만을 자극했다. 식인 살인범 한니발의 아우라를 충분히 보여준 뒤, 탈옥한 그의 뒤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잔혹함을 떠올리며 공포를 느낀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드미트리. 이들 역시 부재한 가운데 상상력을 자극해 독자들을 지독한 불안에 떨게 만든다. 이들이 활자에서 사라졌을 때 무슨 일을 저지를까 두렵고, 마침내 등장했을 때 그 두려움은 정점을 찍은 뒤 해소되거나 혹은 걷잡을 수 없게 돼버린다. 독자의 창의력을 자극해 공포를 스스로 생성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어렸을 때 무서운 영화를 보고 누우면 장롱 위, 침대 밑, 화장 실 안. 아무것도 없는 데 못 쳐다봤던 적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다음날 빛이 들어오고 나서야 마음을 쓸어내리며 안심했던 적이 있지 않은가.

문자 한 통에 사지 끝이 차가워졌던 나.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를 두렵게 하는 건 어쩌면 오관으로 느껴지는 것들 것 아니라, 기억이 만들어 낸 잔상 같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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