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라는 단위에는 왠지 모를 힘이 있다. 사람들은 연초에 계획을 세우고 연말에 그것을 되돌아본다. 한 해를 보내며 술을 마시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술을 마신다. 얼마 전까지는 새해가 되면 다 같이 한 살을 먹기도 했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그저 하루 차이일 뿐인데, 그 하루에서 비롯되는 느낌의 차이는 묵직하다. 1년은 그냥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일 뿐인데, 또다시 공전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새로울 것이 없지 않나.
이렇게 말하는 필자 역시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다. 겨울의 차가움을 묘사한 듯한 음악을 듣고, 성탄을 기념하는 조형물들을 마주하다 보면 얼굴을 찢을 듯한 칼바람에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나의 일상은 달라질 것이 없는데, 어느샌가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심리로 모든 것을 대하게 된다.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 뭐든 좋으니 이벤트가 발생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태도가 아닐까 싶다. 종교를 믿지 않지만 예수의 탄생은 여러모로 고마운 일이다.
필자도 연말을 맞이해 평소보다 조금 더 바빴다. 이따금씩 회동을 갖던 친구 그룹들과의 약속이 12월에 몰린 탓이다. 어찌 보면 매 연말마다 매번 만나던 사람만 만나지만, 우리가 만난다는 사실 외에는 모든 것이 달라져있다. 같은 곳에서 출발한 녀석들이지만 어느덧 서로를 비교할 일들이 많아진다. 그리고 무언가가 안 맞기 시작하는데, 딱히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녀석은 없다. 그저 그들과는 순수하게 친구로 남기는 힘들겠다는 생각만이 스멀스멀 피어날 뿐이다. 나만 그런 것인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지 모른 채로 술잔을 벌컥 들이킨다.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왕 서로 멀어질 거면 내가 질투의 대상이 됐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그리고 8년을 넘게 만난 애인과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예수가 태어난 날이 왜 커플들에게 기념일처럼 여겨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좋은 마음으로 기뻐하니 나도 그에 따른다. 공교롭게도 애인이 좋아하는 가수 '크러쉬'의 콘서트가 크리스마스 주간에 개최되었고, 간드러지는 노래를 들으며 꽤 인상적인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단독 콘서트에 가본 것은 처음인데, 한 사람만을 위해 1만 명 정도가 15만 원가량을 지불하고 추운 날 시간을 내어 찾아온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실제로 크러쉬가 공연 중 "나 진짜 잘 살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때 음악인을 꿈꿨던 사람으로서 무대를 휘젓는 그가 매우 부러웠으며, 평생 무대 아래에서 누군가를 지켜봐야 할 것이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다.
지금 시점에서 남은 연말 이벤트는 신정뿐이다. 앞서 말했듯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신정은 빨간 날 중 가장 맞이하기 싫은 날이기도 하다.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지만 조급한 마음이 드는데, 이는 내가 올해 세운 목표들이 그다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쓰기 또한 그렇다. 애초에 매주 월요일에 글을 올리기로 자신과 약속했으나, 랜덤한 요일에 글이 올라오는 것은 내 몸의 안식을 취하기 위함이 가장 크다. 심지어 저번주 글은 건너뛰었다. 같이 글을 쓰던 1은 바쁜 현생 탓에 잠시 휴식기를 가지겠다고 선언했다. 그 말을 듣고 아쉽다는 생각보다 '그럼 나도?'라는 생각이 먼저 든 나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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