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돈 벌어야하는 흙수저인데
"스위스 유학"
이 두 단어의 조합이 자칭 사회가 일컫는
'흙수저'에게 착 붙는 단어는 아닌 것 같다.
이미 선택과 결정은 나름대로 했다.
떠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휴직이 가능하다는 옵션과는 별개로
내 마음속에서
-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그 시간들을 이렇게 두고 가나,
- 꼬박꼬박 모아도 시원치 않은 시기인데,
- 석사를 하고 온다고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는데,
하며 돈에 대한 생각이 솔직히 떠나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흙수저라 해서
나 자신에게 한계를 둘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돈이 충분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온 뇌는
나에게 절약, 가격 꼼꼼히 비교하기, 열심히 모으기를
가르쳤을 뿐이었다. 기약 없는 무언가를 위해 돈 써보기
따위는 참조할만한 경험적 근거가 없었다.
내가 스스로 한국 사회 맞춤형으로 잘 해왔고
흙수저 집안에 대해 불만을 크게 가진 적은 없었다.
기회의 차이도 괜찮았다. 내가 많이(?) 잘하면 되니까.
정시로 적당한 대학 들어와서 중간중간 휴학하며 놀고
알바도 돈 잘 준다는 과외만 선택적으로 할 수 있었다.
전액장학도 받아보고 졸업전에 이미 취업되어
암흑의 취업시기 같은걸 거친적도 없이
위를 보며 나름 붙잡고 이리저리 올라갔다.
가족을 위한 집을 사고 대출을 갚는 K장녀의 상황은
너무 커다란 짐이라 다른 결정들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면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한국의 사회구조상 '실패'에 대한 회복가능성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인지하고부터는
심적인 여유가 없어졌다.
여기까지 쌓아온것이 한가지의 결정으로
저 멀리 뒷걸음 쳐질 수 있다.
무에서 유를 쌓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이미 손에 쥔 조그마한 것을 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한 이 유학 결정이 과연 잘한 것일까?
수없이 많이 생각했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이 당시의 결정이
'잘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른 길도 있었지만 선택을 안했을 뿐이고,
잘한 것의 정의가 뭔지, 평가가 가능은 한건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니.
그래서 그 생각은 접어두었다.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온전히 내 성향과 원하는 것을 보려고 고군분투했다.
내가 그 당시에 유학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나라는 사람은 계속해서
'아 그때 할걸'하며 생각하는 모습이 눈에 훤했다.
후회보다는 도전과 과정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지금은 누가 물어보면 자연스럽게
'그때 결정해서 정말 정말 다행이야'라는 말을 한다.
그 당시 그 결정을 한 내 스스로가 아주 애틋하고
많이 칭찬한다. 무서웠을텐데 나 아주 대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