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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새난슬 Apr 25. 2023

진은영 시 논평 : 구분지을 수 없는 세계

구분 지을 수 없는 세계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1. 시에 대해     

장르의 이름을 여러 번 언급하는 작가에게 약간의 불신이 있었다. 에세이를 쓰는 사람이 에세이에 대해 말하면 왠지 별로인 것 같은 기분. 그런 작가를 몇 본 적 없으면서도 그랬다. 특히 시집 안에 속한 시에서 시 대해 말한다면 과연 그것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 늘 걱정했던 것 같다.

그러다 진은영을 만났다. 진은영의 시집에서는 ‘시’가 자주 등장한다. 단어가 품고 있는 세계를 시인은 어떤 부분을 비춰줄까.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읽을수록 처음 생각이 유연하게 꼬인 나를 풀어주는 것 같다. 진은영의 시 안에서 시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장 처음으로 마주한 진은영의 시는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이었다.     


2)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봄과 발맞춰 오는 놀라운 일, 자꾸만 젖는 나무토막, 홀로 걷기 어려운 자본주의, 유일한 빛, 무용한 것 같아도 사실은… 뒷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인의 독백. 작으면서 거대한 혁명, 그리고 시. 일곱 개의 단어가 진은영이라는 이름 아래에 한 장소에 모였다.

어떤 단어든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이 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언어는 그 감정을 비스듬히 빗겨나간다. 그래서 단어들을 합쳐 문장을 쓰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어떤 글자도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는 빛날 수 없다. 나는 그 반짝거림을 진은영의 짧은 시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진은영이 세계에서 빌려온 단어들은 그의 문장 속에서 맑게 빛난다.     


3) 구분 지을 수 없는 세계     

진은영의 시, 특히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의 2부의 「그날 이후」는 세월호를 연상시킨다. 세월호라는 단어로 모일 수 있는 다른 수많은 사건들도 함께 온다. 시를 읽지 않아도 사건은 우리 곁에 함께 있다. 혹은 우리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을 수도 있다. 공기층에 부유하듯 떠있는 그것들을 진은영은 조심스럽게 잡아 시 안으로 가지고 온다. 우리는 시인의 행동으로 알 수 있다. 사건 안과 바깥을 완전히 구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진은영의 시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사건을 둘러싼 수많은 감정들은 실재한다. 나는 진은영의 시를 빌려 한 번을 더 울고 나중에 또 울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어떤 일로 또 울게 된다면, 그때는 너무 헤매지 않고 진은영의 시집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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