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와 아이젠하워

by 천리마

인생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진 사람이 갑자기 두각을 나타내면서 앞서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이젠하워와 맥아더의 관계도 그러하다. 맥아더는 군인 가문의 금수저 출신으로서 육군사관학교 수석 졸업, 최연소 육군 사관학교 교장, 최연소 육군 소장, 최연소 육군 대장이자 육군 참모총장, 육군 원수였다. 반면에 아이젠하워의 부친은 가난한 독일계 스위스인 이민자 출신이었다. 맥아더는 참전 경험이 없어 15년 간 만년 소령에 머물었던 아이젠하워를 전속 부관으로 발탁하여 9년 간 같이 근무했다.


맥아더와 비교조차 불가했던 아이젠하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초고속 승진하며 연합군 사령관으로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지휘하며 영웅으로 부상했다. 맥아더는 한국 전쟁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는데 핵무기 사용과 중국으로의 확전을 반대한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직위해제되었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으로서 1953~1961년 동안 재임했다.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뉴욕타임스의 제임스 C. 흄스 기자의 회고록에서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는 어느 날 맥아더와는 점심 식사를, 아이젠하워와는 저녁 식사를 같이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는 "맥아더와 식사를 할 때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를 알게 되지요. 그러나 아이젠하워와 식사를 같이 하면 제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된답니다."라고 적었다. 맥아더는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독불장군 스타일이었고 아이젠하워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재주가 뛰어났던 것이다. 아이젠하워와 맥아더 두 사람의 성향 차이가 후반기 인생을 가른 요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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