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나 말을 맹신하지 말자

by 천리마

역사 기록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기록은 개인이나 특정 세력의 주관 및 편견이 개입되고 기록 당시의 지식이나 정보의 한계도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개인이나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하여 악의적인 왜곡이 작용할 수도 있다.


《조선왕조 실록》의 「선조실록」은 선조가 죽은 뒤 광해군 때 집권세력인 북인(동인 계열)이 주도하여 만들었다. 그런데 광해군을 몰아내고 집권한 북인의 반대 정파인 서인 정권은 「선조실록」의 기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선조수정실록」을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조실록」을 폐기하지 않고 남겨둔 채 「선조수정실록」을 만들어 두 개의 기록을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도 이런 처사는 따라 하기 쉽지 않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전면 부정하여 기록을 없애버리기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워서 「관동별곡」, 「사미인곡」의 저자로 잘 알고 있는 정철에 대하여 「선조실록」에서는 “정철은 성품이 편벽하고 의심이 많으며, 남을 용서하는 마음이 적고, 일을 처리하는 데 지혜가 부족하였다. 권세를 믿고 남을 업신여기며, 자기와 뜻이 맞는 자만을 등용하고, 그렇지 않은 자는 미워하여 해를 끼쳤으니, 그 죄가 작지 않다.”라고 적었다. 반면에 「선조수정실록」에서는 ”정철은 재주와 기개가 뛰어나고, 결백한 지조가 있었다. 권세에 아부하지 않고, 부회하지 않았으나, 의심이 많고 남을 용서함이 적어 일을 처리하는 데 지혜가 부족하였다“라고 적었다. 정철을 「선조실록」에서는 비판적이고 부정적으로 기록했고, 「선조수정실록」에서는 긍정적•부정적 평가가 뒤섞여 있다.


정철은 서인으로서 ‘기축옥사’를 일으켜 상대 파벌인 동인 인사들 1,000여 명을 제거한 주축 인물이다. 「선조실록」을 기록한 동인 계열의 북인은 정철의 이름만 들어도 이가 갈렸을 것이니 부정적으로 기록하였을 것이다. 반면에 「선조수정실록」은 정철과 같은 당파인 서인이 기록하였으니 정철을 완전히 부정적인 인물로만 묘사하지 않았다. 띠라서 후세인인 우리는 ‘기축옥사’ 등을 고려하여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정철을 평가해야 한다.


정철에 대한 역사적 평가뿐 아니라 현재의 글 및 말을 판단할 때도 일방의 의견만을 수용하다 보면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역사적 기록 및 현재의 글과 말을 판단할 때는 즉각적으로 결론 내지 말고 교차검증하면서 느리게 판단해야 가짜에 속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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