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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후 4시, 낮말은 내가 듣는다

by 반짝반짝




매주 수요일 4시마다 아이 수학학원 아래 1층 카페에 앉아있다. 테이블이 몇 개 없는 작은 카페라 버즈를 귀에 꽂지 않는 한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오늘은 나를 제외하고 두 팀이 앉아있다.


한 테이블에서는 초등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곧 캐나다로 떠날 한 엄마가 유학생활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른 엄마에게 들려주고 있다. 내 주변에도 방학 동안 외국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엄마들이 종종 있다 보니 최신 고급 정보에 절로 귀가 쫑긋해졌다. 요즘은 유학원에서 마련한 링크를 보고 필요한 살림살이를 체크해 보내면 그대로 마련해준다고 한다. 엄마의 영어 실력과 돈만 있으면 되는 참 좋은 세상이다.

정말 웃긴 부분은 서울 집을 팔고 가기로 결정한 건데, 국내에 남을 아빠는 살 곳을 구해 알아서 살아야 한단다. 외국에 나가서 살 사람은 유학원 덕분에 아주 간단해졌는데 한국에 남을 사람은 너무 복잡해졌다. 요즘 유행어로 ‘알빠임?’의 자세랄까. 아빠, 힘내세요~ 자유가 있잖아요!


내 자리 옆에 혼자 앉아있는 사람은 나처럼 수학학원에 아이를 보낸 엄마이자 직업이 심리상담가인 워킹맘 같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최신 고급 유학정보를 귀동냥하는 동안 이 사람이 하는 여러 통화를 통해 얻은 결론으로, 남의 통화까지 엿듣는 고약한 취미는 없다는 걸 밝혀둔다.


그동안 카페에 앉아 있으면서 영어회화 선생님이나 보험설계사, 업무시간에 땡땡이 중인 직장인은 종종 마주치는데 심리상담가는 처음이다. 번아웃이 온 의뢰인의 고민을 들어주고 있다. 당황스럽다. 의뢰인은 누군가에게 털어놓기까지 엄청난 고민을 하고 아팠을 텐데 이걸 전혀 상관없는 내가 들어도 되는 걸까. 최신 고급 유학정보를 더 듣고 싶지만 할 수 없이 버즈를 꺼내 귀에 꽂았다. 짱짱한 에이티즈 노래가 심리상담가 목소리를 덮는다. 노래 사이로 말소리가 조금 들리면 할 수 없이(?) 유학정보를 들을 텐데 1도 안 들린다. 성능 좋은 버즈 덕분에 수요일 오후 4시 40분, 에이티즈와 나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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