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을 달랬다.
나는 그 글을 고치고 또 고쳤다.
쓰기가 주는 위로가 있었지만, 나는 다 쓰고 나서도 해방되지는 못했다.
친구와 가족에게 상담실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다들 분개하며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해주었다. 분명히 위로받았다.
가장 힘들 때는 긴급상담 전화에 전화를 걸기도 했다.
전화를 받은 상담자들은 내 말에 호응해주며, 내가 겪은 상담이 나빴고 고통스러웠을 거라는 데에 공감해주었다.
하지만 쓰기로도, 그런 공감과 위로로도 문제에 마침표를 찍을 수 없었다.
나는 판사가 의결 봉을 휘두르듯, 그 상담실 안에서 들었던 말 “전부 무효”라고 선포해줄 수 있는 권위자를 찾고 싶었다.
다니는 병원의 담당 의사가 해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병원은 무려 한 달간 휴가였다.
나는 그 한 달 동안 그 상담실에서 들었던 말을 되새기며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괜찮다는 확신을 줄 권위자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정신과 병원을 찾아가 의사에게 그 글을 내밀었다.
그 의사는 글을 읽을 것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그 상담자를 찾아가서 대결하라고 했다. 다시 상담을 신청해서 그 상담자와 대면하지 않으면, 그 상담에서 들었던 말은 평생 나를 따라다닐 거라고 했다.
나는 물었다.
“그럼, 상담료도 다시 내고요?”
그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속으로 악담을 퍼부었다.
일회성 긴급상담 전화가 아니라, 좀 더 길게 상담을 이어갈 수 있는 상담센터에도 연락했다.
하지만 상담센터에서도 다른 곳에서의 상담에 대해 상담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병원 휴가가 끝날 것을 기다리라고 했다. 그곳에서는 나에게 상담에 대한 상담이 아니라, 과거에 대해 상담해보라고 추천했다. 그러기로 했다. 나는 새로운 상담을 시작했다.
전의 상담사가 내게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한 사건에 대해서, 새로운 상담자도 상담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폭발하는 것처럼 예전에 겪었던 성희롱에 대해서 토로했다. 조금은 후련했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이번에는 내가 상담을 잘 받을 수 있는 좋은 내담자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상담자의 말에 열심히 대꾸하며 긍정적으로 보겠다고 말했다. (무엇을? 거의 온 우주를.)
그러자 상담자가 말했다.
“지난번 상담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네….”
결국 나는 나 자신과 그리고 그 편지도 아니고 일기도 아닌 글과 함께 남겨졌다. 그리고 병원의 휴가가 끝나기를 한 달 동안 기다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