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한 달이 가고, 다니던 병원의 휴가가 끝났다.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가방에는 한 달 동안 쓴 글이 들어있었고, 기분은 담담했다. ADHD들은 최악의 결과보다 기다리는 걸 더 힘들어한다던데, 나는 정말 그렇다. 언제나 답을 기다리는 과정이 거절이나 탈락이라는 답 이상으로 괴롭고 버거웠다. 이제 기다리는 게 끝났으니, 겁날 건 없었다.
진료실에서 만난 의사는 불편해 보였고, 지난 상담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번 상담이요.”
“보고는 받았습니다.”
나는 의사에게 지난 한 달 동안 썼던 글을 내밀었다. 의사는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그 글을 읽었다. 그가 글을 읽기 시작하자 나는 안도감이 들었다. 드디어 누군가가 그 글을 읽은 거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두 분이 일치하지만, 해석은 다릅니다. 저는 중립입니다.”
중립이라는 말에는 화가 치밀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일치한다는 말에는 안심이 됐다.
누군가 그 일이 있었다는 걸 인정해 준다는 것 자체에 나는 고팠다. 다른 병원과 상담소에서 이 일에 대해 상담하기를 거부했었던 것도, 그때 그 상담실 안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들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양쪽의 의견을 들어본 책임자가 인정해 준 것이다.
나는 물었다.
“자살이나 자해 위험도 없는데 치료를 강요하신 것도요? 성희롱 피해자한테 판단력이 떨어진다고 하신 것도요?”
“주의를 줬습니다. 적어도 나쁜 의도는 없었을 겁니다.”
“의도라고요? 그분은 제가 위험하니 개입하려고 하셨다고 하시겠죠. 하지만 저한테 중요한 건 의도가 아니에요.”
의사는 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의사가 그 상담사를 더 두둔하지 않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선생님도 제 상담을 하셨고 검사도 하셨잖아요. 선생님은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나는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검사지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우울과 불안이 내재되어 있는 걸로 추정됩니다.”
의사의 대답은 내가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요. 저는 행복한데요. 약 먹고 나서 잘 지냈거든요.”
“사회적으로 뛰어난 성취를 이루신 분 중에도 정신과적 어려움을 겪은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사회적으로는 성취한 게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요.”
“저도 약을 먹고 있어요.”
“지금도요?”
“네, 지금도 먹고 있습니다.”
낯선 침묵이 무겁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