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진단을 받으려고 병원을 오가며 보낸 하루가 진단을 받지 못한 채 끝났다.
결론은 '불안장애가 의심된다'는 소견서와 '딱 보니까 아닌 것 같다'는 진단 아닌 진단이 전부였다. (이전 글 참조)
허탈한 마음에 동생에게 전화해서 이야기했다.
동생은 좀 걷자고 했다.
동생과 강아지들과 함께 밤의 공원을 걸었다.
강아지들은 뜻밖의 긴 밤 산책에 즐거워 날뛰었다.
동생은 누나가 정신과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안도하는 것 같았다.
동생은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았으면 이제 된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나는 오늘 제대로 된 검사를 못 받았으니 한 군데만 더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만약에 ADHD가 맞다면 내 상황을 타개할 답을 찾은 셈이 될 테고,
아니라면 아닌 대로 열심히 살면 될 테니까.
동생은 누나가 잘 알아서 할 거라며 믿어줬다.
그 말이 고마웠다.
강아지들은 환하게 웃으며 달빛을 받고 뒤뚱거리며 뛰어갔다.
그 웃는 얼굴과 엉덩이들 덕에, 나는 그날 밤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동생과 나는 인적이 드문 길을 한참 걷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밤새 낮에 전화를 돌렸던 정신과 중 한 곳의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내일 아침 일찍 그곳에 가볼 생각이었다.
울적했지만 괜찮은 날이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걷는다는 것도 멋진 일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과 강아지와 걷는다는 건 끝내주게 멋진 일이다.
ADHD에게는 더욱 그렇고, ADHD 진단을 못 받아 울적한 사람에게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