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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 l ll Jan 18. 2023

닿지 못하는 곳.

  이빨은 닦았어? 언제, 나한테 오기 전에?


  한 번.


  낮에는 뭐 했어.


  그냥 멍 때렸어.


  날이 밝는 걸 기다리다 슬슬 첫 차 시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역 앞에서 짧은 몇 마디가 오갔다. 다 이런 내용들이었다. 이빨은 언제 닦았는지, 밥은 챙겨 먹었는지, 머리는 왜 말리지 않았는지. 나는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새끼손가락으로 넘겨주었다. 밤 사이 지나간 이슬인지, 한 참을 울며 뻗친 머리인지, 머리카락은 이내 다시 제자리로 넘어왔다.


  나는 그렇게 여러 번, 그녀의 굳어버린 머리카락을 의미 없이 넘겼다.


  괜찮아?


  길고 낮은 음성이었다. 수많은 되새김과 걱정들 사이로 터져 나온 갈라짐 같은 것이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다시 도망치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다시 애써 웃으며 말을 건넨 것이었는데, 지수가 처음으로 나에게 했던 말은 모든 걸 무색하게 만들었다.


  늦게 말해서 미안해. 난 고맙다고. 그리고 너한테는 따로 말하고 싶었다고. 의미 없는 짧은 몇 마디에 그녀는 고개 돌려 한참을 울었다.


  여전히 넌 괜찮지 않다고. 네가 괜찮아지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던 자신이 너무 밉다고.


  그동안 이야기를 나눴던 여러 친구들에게 짧은 손 편지를 받았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앞날에 대한 응원 글이었다. 난 그럼 그것을 모아 또 하나의 상자를 만들었다.  


  금속이 울리는 소리가 귓속을 갈랐다.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이 부대끼며 열차에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잡은 손을 끌어 그 속으로 그녀를 넣어주었다. 그녀는 다시 낯선 사람들을 비집고 열차 사이를 오갔다. 불투명한 차창 너머로 그녀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문이 닫히고 천천히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많은 사람을 태운 열차는 이리저리 몸을 뒤틀었다. 그녀는 낯선 이들과 함께 그 진동을 온몸으로 맞으며 서 있었다.


  날이 밝고 다시 본 편지지는 무색의 흔한 A4용지였다. 글 마디마다 진한 온점이 찍혀 있었다. 글 중간에 잠시 고민할 때 볼펜을 세우던 그녀의 버릇이었다. 나는 찍히지 않은 마지막 마침표 부분을 손으로 짚으며 이내 그것을 그 자리에 두고 돌아섰다. 혼자 남은 역 안으로 금방 또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섰다. 모두 에스컬레이터의 검은색 가드레일을 잡고 천천히 내려왔다. 나는 그들과 반대로 계단을 빠르게 올라갔다. 익숙지 않은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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